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렌디퍼 Oct 29. 2024

당신보다, 성공한 인생

친정엄마

둘째가 물었어요.


"왜, 엄마는 할머니한테 '엄마'라고 안 불러요?"


지금까지 '엄마'라고 다정하게, 아니 그저 필요에 의해 입 밖으로 내뱉었던 적이 , 글쎄요.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제 내년이면 마흔다섯이나 되는 아줌마가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지뢰밭에 서있던 아이였으니

편안히 그녀를 부를 수 있던 적이 없었어요.

나의 '엄마'라는 호칭은 타인에게 설명해야 할 때나,

혹은 급박한 사고가 터졌을 때나 외마디로 나올 때뿐이죠.


말이 참 없었대요.

울거나 보채지도 않아서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외할머니께서는 혹시 장애가 있는 건 아닌지 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할 정도였더랬어요.


아마 그 핏덩이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을 줄 안다고, 눈치 하나는 빠삭했나 봅니다.

내가 태어난 세상에서는 나의 눈물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요. 무조건적인 사랑 따윈 일찌감치 포기했나 봐요.



항상 울고 있던 사람.

늘 우울했던 사람.

자신의 분노를 나약한 새끼들에게 풀어낼 수 밖에 없던 사람.



이번에 암진단사실을 알리기까지도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습니다. 자식의 아픔을 보담기보다는 그로 인해 더 아픈 자신을 드러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세월이 흘러 더 늙어질수록 그렇게 우린 평행선보다 더 큰 각을 이루며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많은 실패와 실수와 상처들이 난무하는 내 인생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나의 엄마보다 성공한 인생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니까요.

그리고 사랑한다 말해주니까요. 때론 존경한다고 해주고 롤모델이라 칭찬해 주잖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  살갑게 '엄마'라 부를 수 있을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요.


당신보다 내가 성공해서 기쁜 것도 아니고,

다시 곱씹어도

우리가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아 씁쓸한 밤입니다.


그런데

훗날 이렇게 당신을 보내면 제가 많이 아프겠죠..


더 큰 상처와 흔적은 남기지 말기로 해요.



이미 우린 많이 미안한 사이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