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출장길에 기차 안에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은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호하는 시대이기에 이렇듯 전화가 오면 약간 긴장하게 된다. 혹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서다.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고 시간 될 때 조계사에 들러 소원 기도문을 접수하라는 말씀이셨다. 전화로 놀란 마음에 약간 짜증이 났나 보다. 별 소원 같은 게 없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새해를 맞는 의미 있는 행사이니 꼭 접수하라는 말씀이었다. 더 긴 이야기를 하기 싫어 그러겠노라 말씀 올렸다.
전화를 끊고 창밖의 지나는 풍경을 보며 되뇌어 본다. ‘소원이라, 지금 나의 소원은 뭘까?‘ 어머니의 말씀대로 딸들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소원일 수도 있겠다. 부모님의 건강도 큰 소원이다.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두 분의 건강이 자식들의 평안에 큰 기여를 하신다. 이런저런 걸 조합해 보면 지금이 가장 좋은 것 같아 그저 감사함이 크다. 그러니 ‘2024년 소원은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지금처럼 지내게 해주세요’라고 해야 하나도 싶다. 목적지까지 시간도 남았겠다 본격적으로 나의 소원을 끄적여 보았다. 이것도 좀 이상하긴 하다. 소원은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간절한 것인데 소원을 생각해야 한다니 이는 분명 지금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소원은 어떨까?
‘2024년에는 로또 1등 당첨되게 해주세요.’ 어쩐지 이것은 소원 같지가 않다. 적어도 소원이라면 마음에서 동의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어쩌면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면 마음에서도 접수가 안 되나 보다. 소원의 대상인지 아닌지는 먼저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소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정부분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제 좀 진지하게 소원을 생각해 보자.
건강은 소원에 들어가겠다. 온 가족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누구나 할 법한 소원이다. 그런데 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만일 병원을 운영한다면 어떨까? 너도나도 건강을 기원하고 실제로 그 모든 소원이 성취되었다면 나는 병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파서 병원 매출이 크게 증대되게 해주세요라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소원은 누구나 할 것 같다. 그래서 역시 그 소원이 모두 성취되었다고 치자. 너도 나도 돈을 많이 벌었다. 그 말은 시중의 통화량 증가로 화폐가치가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붕어빵 하나에 만 원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면 소원은 성취되었지만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처럼 우리의 소원은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딸아이의 취업, 여기에는 토를 달 것도 없겠다. 하지만 어떤 회사에 어떤 신분으로 취업하는가도 문제이다. 이왕이면 정규직에 일은 수월하고 돈은 많이 버는 직장이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취업에 대한 소원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바꿔야 할까. ‘공기업 또는 국내 대기업 상장사 10위권에 드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하게 해주세요.’ 원하는 바는 맞는데 절대자와 무슨 계약을 하는 것 같아 소원 같지가 않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좀 합리적인 소원은 없을까? 그래서 나의 소원문을 이렇게 한번 적어 보았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남은 여력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되는 일은 될 것이고 안 되는 일은 안 될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큰 뜻이고 저의 영역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당신의 큰 그림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며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지금껏 제게 주신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법륜스님은 소원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부처님, 부처님은 부처님의 일을 하십시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언감생심 나는 절대자에게 그 정도의 당찬 용기는 없다. 자질도 안 되는 데 너무 오만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