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 aint heavy Nov 03. 2020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비장애 형제와 특수교사의 경계에서

 처음 특수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수업으로는 나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아이들에게 사랑만 가득가득 주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다른 건 몰라도 학부모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교사는 내가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내가 늘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집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은 특수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생활을 묻는 나의 질문에 그 어느 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활동을 했어?"
"급식에는 어떤 반찬이 나왔니?"
"무릎에 상처는 어쩌다 다친 거니?"

비단 우리 동생만의 문제가 아니리라. 이런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는 아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비장애 아이들이라면 유치원생들도 답할 수 있는  질문이자, 가족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들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시원하게 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알림장을 좀 더 꼼꼼하게 쓰고, 사진도 자주 보내드리고, 아이들의 기분이나 감정도 좀 더 세밀하게 살펴서 얘기해 드려야겠다 다짐했다.




 어느 날, 상담 중 어머니가 하염없이 우셨다. 자폐를 가진 딸이 가엽고, 어떻게 키워내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다고, 그리고 비장애인 큰 딸이 가족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쏟아내시면서 말이다. 나도 같이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어머니, 저도 사실은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어요. 저희 집도 그랬어요."


그 말이 내 입술에서 떨어지자마자, 어머니는 놀란 눈을 하며 눈물을 그치셨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 후 자리를 일어나시며 어머니가 나에게 감사인사를 전하셨다.

"선생님, 오늘 진짜 위로가 되는 것 같았어요. 고맙습니다. 우리 큰 딸도 특수교사가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지독히도 힘들었던 나의 옛 이야기가, 지금도 험난한 장애인의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구나. 나 정말로 처음 마음먹은 대로 학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특수교사가 되고 있구나.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것이 나에게도 위로가 됐는지 혹은 치기 어린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만 겪는 낯선 경험이라 생각하면 한없이 두렵고 막막하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 명만 곁에 있다면 두려움보단 동질감과 위로를 얻게 된다. 특수교사로서의 삶도, 장애인의 형제로서의 삶도 살아온 것보단 앞으로 진행될 삶이 더 길겠지만, 또한 많이 경험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알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과부 사정을 잘 알아주는 홀아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