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wn Dec 20. 2020

떠나야 한다는 것

여행에 관한 고찰

여행은 그대에게 적어도
다음 세 가지의 유익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나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 브하그완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무엇일까? 평소에 얻지 못하는 깨달음?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인터넷으로만 접했던 멋진 풍경? 그 원하는 바가 무엇이 되었던,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공통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떠났던 여행의 이유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는 집 밖에도 잘나가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다. 시험이 끝나면 모든 학생들이 ‘이제 쉴 수 있겠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각자 달랐다. 고생한 자신을 위해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후자의 유형이었고.


그러나 누군가 말했던가? 삶이란 하나의 여행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15살부터 홀로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익숙한 것만을 찾던 내 삶은 어느새 항상 새로운 것들로 채우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그런 나에게 겨우 익숙해진 장소를 떠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란 퍽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행을 떠나게 되었던 이유는, 나의 익숙한 삶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였다. 밝히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너무 힘이 들어 잠시 사람들을 멀리하며 혼자 지내다, 이내 스스로의 모습조차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혐오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돌연 휴학을 하고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떠났다. 무언가를 보려 떠난 것이 아닌, 보지 않으려 떠나는 것. 그것이 나의 첫 여행의 이유였다.




익숙한 모든 것과 멀어지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스스로와도 멀어져 온전히 자유롭게 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만 찾아다녔다. 사람도 장소도 전혀 새로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나는 어디에서도 혼자이지 못했다. 누굴 만나도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떠나는 내 스스로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모든 흔적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는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새로운 누군가로 읽혔고, 나는 그저 낯선 여행자일 뿐이었다. 나에게 내 스스로는 누구보다도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그곳에 사람들에겐 반대였다. 낯선 여행지란 없었다. 그저 여행자인 내가 낯선 이일 뿐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누군가가 될 수 있었다. 여행은 내게 멀리 있던 것은 가까이, 가까이 있던 것은 멀리 데려가 주었다. 사실 나는 나와 가까웠던 것이 아니라 너무 멀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모든 낯선 여행지에서도 익숙함을 느꼈고, 오래 머무른 곳에서도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여행이 가져다주는 것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무엇과 멀어지는 것이 아닌 떠나온 곳과 도착한 곳을 동시에 발견하는 일이었다.




괴테는 말했다.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함이라고. 어떠한 곳에 도착해야만 레이스가 아닌, 그 출발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이 여행의 의미라는 뜻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상황에 떠밀려 떠났던 여행의 경험 이후로, 여유가 생기면 스스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구체적인 계획이 동반되어야 마음이 놓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아무렴 어떤가? 계획이 없다고 여행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자유롭고 설레는 여행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여행에 필요한 것은 돈이나 계획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떠나본 자들을 알 것이다.


우리는 때로 떠나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그래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삶이란 하나의 여행이라는 말에 나는 공감한다. 익숙한 고향이나 보금자리를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그 무엇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저 새로운 여행을 떠날 시간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그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전보다 더욱 커진 고향에 대한 애착과 함께. 더욱 스스로와 가까워진 모습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 넣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