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4화
[대문 사진] 유럽 대륙을 공포에 몰아넣은 바이킹 선단
두 번째 시기는 바이킹들의 수많은 선단이 강을 거슬러 내륙으로까지 침입을 일삼던 시기에 해당합니다. 840년부터 바이킹들은 루앙, 깡토비크, 낭트, 배욘느, 생트 그리고 보르도를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게다가 바이킹들은 프랑크 왕국의 성소라 알려진 곳들을 파괴하고 모든 종교적 제식들을 금지시켰죠. 이는 정말로 놀라운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크 왕국의 기반이 되는 곳 모두를 정확히 겨누고 공격했습니다. 풍요로운 수도원들과 도시들 그리고 항구들이 이에 해당했습니다. 더해 의도적으로 카롤링거 왕조와 아끼탠느 그리고 브르타뉴 사이를 이간질시켜 불화에 휩싸이게 만들었습니다.
기독교들은 도처에서 바이킹들의 침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하느님께 간구했습니다. “노르망디 인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그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옵소서!” 곳곳에서 비탄의 상황에 처한 곡성이 터져 나왔죠.
침략자들인 바이킹들에 의한 참상이 상세히 전해지면서 그들은 공포에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이들이 기록한 참상은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히 전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탈은 물론이고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인지, 또한 전쟁 상황은 어떠했는지, 우두머리는 누구였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해스팅’(스칸디나비아 어로는 하스탱(Hàsteinn))은 루아르 강 연안에서 맹위를 떨쳤습니다. 866년 브르타뉴 인들과 연합한 이 용감무쌍한 세력은 호베르 르 포흐가 죽자 시들어졌죠. 그는 부르쥬와 오흘레앙을 약탈했으며, 앙제르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훗날 프랑크 인들과 브르타뉴 인들은 합세하여 872년 앙제르를 되찾았습니다. 해스팅은 882년 루아르에서 완전히 퇴각했죠. 「생베르탱 연대기」가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망슈 해안의 섬들에 정주하면서 그는 “대서양 연안 지역을 약탈하다가” 890년 솜 지방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음 해 해스팅은 아미앵에서 위드 국왕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바로 영국 땅에 상륙을 시도했고 「앵글로 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894년에 영국 정벌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11세기, 12세기 연대기들은 그가 어떠한 행적을 보였는지 또한 롤로에 대항하기 위해 어떠한 공격과 약탈을 꾀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전무합니다. 859년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고 왕국의 수장이 되었다는 기록만 전해지죠. 현대에 와서 이 같이 다양한 견해에 무조건 수긍할 수는 없지만, 우두머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그들은 이탈리아의 루나(Luna)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책략으로 모든 연대기 저술물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영광의 상징이자 전설적 영웅들로 취급받는 혜택을 톡톡히 누린 것 같습니다.
연대기들이 전하기를 바이킹들의 침략은 브레슬르에서 꾸에농에 이르는 단지 유일한 지역, 즉 고대 뇌스트리(라틴어로 뇌샤트리우스라 부르는) 지역의 일부에서만 발생한 일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바이킹들의 침탈과 약탈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자행되고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나아가 노르망디 전체를 통합하는 데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립되지 않고 일치단결하여 한데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유럽 전역이 바이킹들로 넘쳐났지만, 아직까지 바이킹들에 의해 점령되지 않은 프랑크 왕국의 또 다른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굳건한 대오단결만이 필요했던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