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센의 망루

나의 프로방스 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요새 맨 꼭대기에 세워진 ‘사라센 망루’


보 드 프로방스 지역에 사라센이 침입했다는 확실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요새는 가까운 지중해안에 상륙한 사라센인들이 두려워 산꼭대기에 관측용 망루를 지은 것이 성채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독수리 둥지처럼 백악기 석회암 지형의 돌출된 산 정상에 성채가 세워진 역사는 레 보(Les Baux)[1] 가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더군다나 레 보 가문의 내력은 ‘전설’로 가득 찬 ‘허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 보 드 프로방스를 소개하는 가장 권위 있어 보이는 인터넷 사이트 홈페이지에서 조차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보듯이, 마을의 출현을 ‘전설’에 기대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덕 바위에 성채가 들어선 중세의 역사는 전설에서 비롯했다. 아기 예수 탄생 후 동방박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발타자르(Balthazar) 왕은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지금의 레 보 드 프로방스에 해당하는 곳까지 순례를 계속했다고 전해진다. 후손들은 문장에다가 찬란하게 뻗어나가는 16개의 빛줄기를 발하는 커다란 별과 함께 ‘à l'asard Bautezar’, 즉 ‘au hasard Balthazar’라는 명구(名句)[2]를 더하여 그들이 대단한 혈통을 지닌 가문의 후손임을 주장한다.”[3]


이것이 ‘허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전설은 늘 선조들의 저 아득한 시대를 떠올리는 후세 역사가들의 상상력에서 기인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어떤 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었던 그들은 성서 속 서사까지 끌어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에 이슬람 세력은 에스파니아(스페인)의 코르도바를 점령하고 칼리프 왕국을 건설하면서 지중해 해상권을 거머쥐고자 프랑스 지중해 연안까지 넘나들며 이 풍요로운 땅을 호시탐탐 노린다.


레콩키스타(에스파니아 고토 회복 운동)가 들불처럼 번져 알 안달루시아로 한정된 세력으로 축소될 때까지는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까지 넘볼 정도로 큰 세력을 형성했다.


여기서 되짚어 볼 점은 이슬람과 사라센의 관계이다. 사라센은 흔히 ‘아랍인’ 또는 ‘베르베르 인’ 또는 ‘페르시아 인’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지, 어느 종족을 가리키는지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사라센을 ‘이슬람 세력’으로 대체하면 주체가 명확해진다. 심지어 레 보 드 프로방스의 견고하고도 아슬아슬한 요새 맨 꼭대기에 세워진 망루 이름이 ‘사라센 망루’란 점 또한 이를 보다 확실히 뒷받침한다.


사라센 망루(La Tour Sarrasine).


사라센은 프로방스 주민들에게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협이자 위험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슬림(이슬람)이란 용어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사라센 사라센”이라 불렀던 정확히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적’을 가리키는 공포의 용어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을 따름이다. 하여튼 사라센은 풍요로운 땅에서 사는 프로방스 인들에게는 다가오는 ‘공포’요 닥쳐올 ‘위협’이었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라 주장한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20세기 후반에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인류는 저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문명의 충돌을 야기해 왔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헌팅턴은 서구와 이슬람이 필연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이유는 기독교 진영(정교회 또는 서방)과 이슬람 진영 사이의 관계가 늘 어려웠기 때문이라고까지 주장한다. [4]


헌팅턴에 따르면, 국제 관계는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인류 사회의 맥락, 그 일부가 될 것이란 점이다. 처음에는 권력을 확장하려는 군주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그다음에는 구성된 민족 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전쟁은 제1차 세계 대전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이데올로기가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격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 순간부터 갈등의 원인은 정복과 권력과 결부된 지정학적인 것에서 벗어나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국제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냉전에서 절정에 달했으며, 냉전은 두 가지 사회적 모델의 대립을 도입했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국제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근에 일어난 911 테러는 서방과 이슬람 세력 간의 ‘문명의 충돌’을 가장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경우였다고 그는 주장한다.


헌팅턴은 이제 갈등을 이데올로기적 용어가 아니라 문화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의 갈등의 근본적이고 주된 원인은 이데올로기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 인류 내부의 큰 분열과 갈등의 주요 원인은 문화적인 요인 때문이다.


민족국가는 계속해서 국제무대에서 가장 강력한 행위자가 되겠지만, 세계 정치의 중심 갈등은 서로 다른 문명의 국가와 집단 사이에 있다. 따라서 문명의 충돌은 전 세계적으로 정치를 지배할 것이고, 문명 사이의 단층선은 미래 전투의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다.”[5]


실제로 여론과 지도자들은 문화적으로 가까운 국가나 조직을 지지하거나 협력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할 것이다. 그러면 세계는 곧 문명의 충돌, 즉 문명 블록 간의 냉전과 같은 다소간의 잠재적 갈등과 다소 평화로운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헌팅턴은 인류문명을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와 관련하여 정의하고 있다. 또한 각 종교가 이룬 문화를 바탕으로 8개의 문명과 이에 더해 잠재적으로 아홉 번째 문명(불교 문명)을 정의하지만, 인도에서 멸종하고 기존의 모델에 혼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를 위대한 문명의 기원으로 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미숙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서양(서유럽, 북미, 오스트랄라시아 등), 라틴 아메리카, 이슬람 국가들, 슬라브-정교회(러시아와 주변 국가들), 힌두교, 일본, 유교(중국-베트남-한국으로 이어지는 벨트) 및 아프리카 대륙 이렇게 8개의 문명권으로 나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명의 충돌이 단일한 문명권의 창조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분열’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 정치학자의 20세기말 가장 논란을 일으킨 『문명의 충돌』은 심지어 이슬람의 부활을 마르크스주의와 유사하다고까지 단정한다. 한마디로 이러한 그의 극단적인 ‘이슬람 혐오’는 21세기 이슬람 국가들의 발전과 연계해서는 아쉽게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중세 기독교 국가들과 이슬람 세력들 간의 투쟁은 단지 세력의 확장이었으며, 그들이 신성시한 땅의 고토 회복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9세기, 10세기 레 보 드 프로방스에 위협적이었던 사라센은 ‘약탈’과 ‘노예’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인다.


오늘날 사라센 하면 ‘해적’이 떠오르고 그들이 타고 다니던 돛에 해골이 그려진 해적선이 그려지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덴만에서 활개치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혹여나 사라센의 후예들은 아닌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사라센 사람들은 사라의 후손이라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거나, 이교도들에 따르면, 시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그들은 매우 넓은 사막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이스마엘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스마엘 사람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는 이스마엘의 아들의 이름을 딴 백향목, 또는 하갈을 좇는 아가레니안들. 그들은 사라의 후손임을 자랑하기 때문에 사라센이라고 잘못 불린 것이다.”


- 세비야의 이시도르(Isidore de Séville), 어원학(Étymologies)에서.






[1] 보(Baux)라는 이름은 ‘가파른 곳’을 의미하는 프로방스 방언 ‘bau(바우(baou)라 발음된다)’에서 유래했다.


[2] au hassrd라는 용어는 ‘우연히’란 뜻을 포함한 말로 여기에서는 ‘어찌 되든’ 또는 ‘위험을 무릅쓰고’란 뜻에 가깝다.


[3]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aux de Provence) 산하 여행안내 사무소(Office de Tourisme) 홈페이지, 역사(Histoire) 항목 참조.


[4] 사뮤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 『문명의 충돌(Le Choc des civilisations)』, Édition Odile Jacob, Paris, 1997 참조.


[5] 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