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회화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28화

by 오래된 타자기


4장 6
(1857-1859)



9월이 되자 에두아르의 부모는 쥬느빌리에로 거처를 옮겼다. 반면 이 시기에 수잔의 외할머니가 명을 달리했다. 외할머니는 항상 수잔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유일한 아내라 할 수 있는 그녀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런 관계로 그녀가 살고 있는 집과 ‘거의 붙어있는’ 오텔 드 빌 거리로 짐을 옮겼다. 바티뇰 구청의 웅장한 건물이 건너편 정면에 떡 버티고 서있는 곳이었다.


이 지역은 최근에 파리에 편입된 곳이기도 했다. 오스만에 의한 거창한 대 혁신의 파도는 이곳까지 밀어닥쳐 파리의 한 구청 소재지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 구청을 상징하는 번호도 부여받았다! 파리 18구. 마네 역시 이 18구에 거주하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건너편 구청 건물을 바라보면서 수잔은 머릿속에 결혼식 장면을 그려보았다. 아들이 있다는 것뿐, 그녀는 자신의 연인이 거의 자기 집에 붙어살다시피 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다. 마네에 대한 불같은 연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일일까 하는 고민이 다시 불길처럼 타오르면서 점점 그녀를 옥죄어갔다.


새로 아틀리에를 구해 이사한 뒤로 다시 여름이 찾아왔다. 그 해 여름에 마네에게 반가운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인 보들레르가 자신의 모친이 살고 있는 옹플뢰르에 모친과 함께 기거하면서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보들레르는 한시도 마네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마네에게 헌정하는 산문시 한 편을 보내왔다. 「밧줄」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는 어린 알렉상드르의 자살을 임상 진단을 하듯이 정밀하게 다룬 내용이었다.


그걸 읽자마자 아이의 죽음이 떠올라 마네는 눈물을 흘렸다. 시인이 ‘조숙한’이란 단어를 통해 아이의 죽음을 애도한 것에 고마워하면서도 하루빨리 아이의 죽음을 잊어버리겠노라 보들레르에게 약속했다.


마네는 1861년의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두 점의 그림에 착수했다. 「스페인 가수」란 제목이 붙은 기타를 치는 스페인 남자를 그린 그림과 함께 기이하게도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한 채 커다란 크기로 그리고자 구상만 하고 있던 「부모의 초상화」였다.


아버지를 그리면서 마네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세부적인 묘사에 이르기까지 예리한 눈으로 샅샅이 훑어보면서 어딘지 아버지의 포즈가 불안정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두 다리가 거의 마비되어가고 있는 중이었을 뿐만 아니라 의식마저 가물가물했다. 병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병이란 말인가? 모친은 그에게 대답하는 것마저 거부하고 나섰다.


1860, Chanteur espagnol.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스페인 가수(Chanteur espagnol)」, 1860.



1860, M et Mme Auguste Mane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화가의 부모 초상화(Portrait de ses parents)」, 1860.


그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시바삐 그림을 완성하기만 하면 되었다. 새해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10년의 시기였다. 마네의 10년. 그는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맘먹었다.


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가 꿈꾸고 있는 세계와 슬픈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 야망과 실패의 그 엄청난 간격을 메울 도리가 전혀 없었다.


오직 하나뿐인 자식을 기르고 있는 아내를 위한 사랑은 다른 출구가 없었다. 아이도 그를 못 알아볼뿐더러 마네 또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만이 오직 그를 슬픔에 젖게 만들고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이중의 감정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그로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억지로 감내하고만 있었다. 그가 살아온 30년 가운데 10년 만이라도 고요한 평정에 이를 수 있는 시기이어야만 했다. 또한 영광의 시기이어야만 했다. 그의 미래를 예언했던 보들레르의 확신에 찬 어조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정반대로 점점 더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왜냐면 그는 정말 진정한 예술가였던 탓이다.


보들레르는 마네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탁월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일까? 마네는 보들레르가 자신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걸 달리 나쁘게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보들레르를 따르고 우스꽝스럽게도 그에게 기꺼이 순종하는 태도는 시인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눈부신 성공은 분명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생애에서 마침내 공식적으로 모든 상을 싹쓸이하여 명성을 얻게 되고, 국가는 그에게 작품을 주문하고, 관전에서는 마치 테이블에 냅킨을 말아서 꽂아놓는 둥근 고리처럼 심사위원에 그를 위촉하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지칠 줄 모르고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고 믿은 마네로서는 스스로에게 부과한 책무를 짊어지고 고단하게 예술활동을 펼치면서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해 적절히 해명을 곁들일 수밖에 없는 난처한 처지이면서도 동시에 유황냄새를 맡은 표정을 짓고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세상에 내놓는 작품마다 모두 그가 감내하기에는 엄청나면서도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심한 역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보들레르는 그때마다 마네를 격려하고 칭찬했다.


“적어도 자네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네. 아마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일세.”


“너는 모든 걸 원하지만, 네 그림은 정반대야.” 으젠이 에두아르에게 덧붙였다.


마네는 모든 걸 함께 나눌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혼자만의 은밀한 망상에 빠져들어갔다. 그가 실제로 고민하고 있는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기 위하여 그는 혼자이고 싶었다. 그의 은밀한 삶까지도 마네는 고민하고 있었다.


모친 또한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쁜 쪽으로 그를 이해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모친에게조차 모든 걸 털어놓지 않았다. 모친은 실제 가장 나이가 많은 장남이기도 한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물론 그에게는 수잔도 있었다. 그는 그녀를 항상 열렬히 사랑했던 까닭에 그녀가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그녀를 매번 격렬하게 끌어안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그녀가 피아노를 연주하자마자 마네는 금방 광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혼자서 수잔은 「라인 강의 황금물결」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다. 마네는 수잔이 피아노를 치는 동안 줄곧 마음속으로 그녀가 편곡한 음악을 이해하고자 애썼다. 수잔은 마네가 바그너를 좋아할 것을 거의 강압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경솔한 짓이었을 뿐이다.


수잔은 또한 작곡가 리스트가 그녀에게 보내준 최근에 작곡한 오페라의 서곡들을 열심히 연주했다. 에두아르는 그것 역시 상탄해 마지않으면서 음악을 듣는 걸 즐겼다.


더하여 그가 사회 각계각층 온갖 신분을 지닌 또 다른 여인네들에 빠져드는 걸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회의 온갖 잡동사니는 마치 자신에 대한 신뢰를 보증하는 듯했다.


경박한 여인네들뿐만 아니라 이른바 사회의 저명인사 부인네들을 포함하여 온갖 부류의 여자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마네는 참으로 천진난만하게도 자신과는 동떨어진 이 같은 부류의 여자들에게 탐을 냈다. 아무 죄의식도 느끼지 않은 채 온갖 부류의 여자들을 섭렵하고 다닌 것이 그 증거였다.


수잔은 그런 마네를 사랑하고 이해했으나 그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그녀 역시도 그가 자신을 받아들인 만큼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표명하는 일도 없었다.


마네로서도 당장 그녀보다 훨씬 순종적인 화가의 아내를 구하기도 마땅찮은 일이었다. 그렇다. 그건 확실하다. 그는 그녀와 결혼할 예정이라는 점만큼은…… 그것도 곧바로.


아버지가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자 마네의 두 형제들 또한 아버지가 오랫동안 앓아온 병으로부터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버지가 운명하는 순간까지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마네는 수잔에게 아버님이라 부르는 아버지가 운명하면 그때 그녀와 결혼할 것이라 약속했다. 그녀는 마네의 그 말을 믿었다.


마네 주변의 인물들과 아버지의 유산이 상속되기만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은 수잔이 임신했을 때부터 마네를 딸이자 어머니인 여자들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수잔 또한 이 남자로부터 한없이 도움을 받을 처지가 못되었다.


거의 10년 가까이 그녀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그 둘을 돌보고 있었다. 처음의 사랑이 식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면 그가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레옹은?”


“뭐? 레옹?”


“레옹은 잘 지내나? 아닌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레옹을 기다리다가 지쳐 에두아르는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는 집에 들어서기 직전 막 「부모의 초상」을 관전에 출품할 대표작으로 정하기로 맘먹었다.


준비는 다 되었다. 단지 작품을 출품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1859, Cavaliers espagnols.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스페인 기사들(Cavaliers espagnols)」, 1859.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는 마네의 친 자식인 레옹.


1856, Tête de vieille femme.jpg
1858, Chardons.jpg
1858, Femme versant de l'eau.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왼쪽부터 「노파의 초상」(1856), 「엉겅퀴」(1858), 「물 따르는 여인」(1858).


1858-1859, Le Crist Jardinier.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정원사의 모습을 한 예수 그리스도(Le Christ Jardinier)」, 1858-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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