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92화
[대문 사진] 파리 16구 파시(Passy) 공동묘지에 잠든 에두아르 마네
18장-5
(1882-1883)
3월 18일 어느 순간 그때까지 멀쩡하던 발가락 발톱들이 진 물러서 모두 빠져나갔다. 다리가 완전히 썩어 고름이 찬 탓이었다. 곧 다리도 발톱처럼 완전히 물러터진 끝에 이제야말로 절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마네를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행여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애타게 고대하는 눈빛이었다.
다리를 절단한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환자는 너무나 허약했다. 과연 수술은 잘 견딜 수 있을까? 수술을 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게 아니면? 아니면 환자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에도 불구하고 마네가 숨을 거둔다면…….
어느 의사가 과연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인가? 마네는 모든 것에 동의했다. 의사 가셰는 마네를 진료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처방을 내린 적도 없었다. 모든 건 시르데가 결정한 짓이었다.
다리 절단 수술은 4월 20일에 이루어졌다. 마네의 집 거실 테이블에서였다. 자연 감염에 대비한 병균 소독 또한 아주 미비한 상태였다. 화가는 그때까지도 의식이 있었다. 비록 마약에 중독된 상태이긴 하였으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의식이 분명했다.
마네는 흰 가운을 걸치고 앞에 수술용 앞치마를 두른 채, 손에 수술용 도구를 들고 서로 언쟁을 벌이고 있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쳐다볼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멀쩡했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의 골자는 무릎 아래쪽을 자를 것인지, 위쪽을 자를 것인지 하는 것이었다. 순간 마네는 렘브란트의 해부학 수업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떠올랐다.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다른 한쪽 다리마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의사들은 그저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이미 검게 썩어 들어간 다리를 자르려고만 들었다. 마취도 하지 않고 오직 알코올만 갖고 수술하려고 덤벼들었다. 알코올도 엄청나게 많은 양이 필요한 상황이기는 했으나, 의사들은 마취제 없이 오직 알코올만 사용했다. 다리를 절단한 뒤, 고통이 좀 줄어들자 마네는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말이 수술이지 그저 다리를 절단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방도가 없어 보였다. 의사들 중 한 명이 잘린 다리를 벽난로 안 소화기 뒤, 눈에 안 띄는 곳에 놔둔 바람에 썩은 내가 온 집안에 진동하면서 방안이 악취로 휩싸여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레옹은 다음날이나 되어서야 마네를 보러 집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기가 너무 늦어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마네로서는 아무 쓸데없는 다리 한 짝을 잘라버린 것 말고는 달리 큰 진전이 없었다. 종양이 다리 전체에 퍼지는 걸 막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다리를 절단하기 전과 똑같은 통증이.
마네는 다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괴로워했지만, 남은 다리 하나마저도 자를까 봐 전전긍긍했다.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다시 시작된 끔찍하고도 무서운 통증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가족들에게 영원히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된 것인가? 마네는 절실히 그런 순간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레옹은 마네더러 수잔과 함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대기실에 누가 있다고?” 마네가 뭐라 중얼거렸다. 베르트도 있나? 그녀도 와있었다. 그녀 역시 대기실에서 마네를 보기 위해 혼자 앉아있었다.
베르트는 마네가 누워있는 방에서 잠시 머물렀다. 선 채로 가족들과 두 손을 꽉 잡고 아무 말 없이 인사를 나누고는 마네에게로 다가가 얼굴을 쓰다듬어준 뒤에 눈물을 보이지 않은 채 방을 나갔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몹시 흐느껴 울었다.
말라르메와 함께 방에 들어온 으젠은 수잔과 레옹과 함께 한쪽에 선 채로 마네를 지켜보았고 말라르메는 마네의 머리맡에 앉아 환자를 들여다보았다. 서로 아무 말도 건넬 수 없는 상황에서 정적만이 감돈 채, 너무 자유롭다 못해 공허한 시간만 흘러갔다.
모네와 샤브리에흐도 마네가 누워있는 방엘 들러 문가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환자를 지켜만 봤다. 깊은 정적만이 흘렀다.
나다르는 보들레르가 운명할 때 수잔이 피아노를 계속 연주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피아노를 연주하리라 생각했지만, 가만히 마네를 지켜만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마음도 기력도 없었다. 마네가 좋아하는 하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수잔의 손이 심하게 떨리면서 뺨에는 눈물만 줄줄 흘러내렸다.
그 순간 샤브리에흐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려 하자 레옹이 제지하고 나섰다. 말라르메만이 오직 방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드가도 안 되고 르누아르도 안 되었다. 그들 모두는 문지방을 넘어설 수조차 없었다. 마네의 몸에 만연한 병균에 만일에 하나라도 감염될까 봐 미리 예방조치를 하기로 작정한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혹시라도 무슨 소식이 있을까 싶어 매일 마네의 집엘 들렀다. 하지만 감히 마네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 그를 위로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귀스타브는 매주 저녁마다 집엘 들러 거실에 누워있는 마네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온 생애를 함께 해온 형제들끼리 마지막 온정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귀스타브는 머리맡에서 마네에게 하루 있었던 기사들을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끝까지 그럴 참이었다. 마네가 더 이상 몸을 꿈틀거리지 않는다 해도 그럴 심산이었다.
마네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관심 있어하던 표정마저 굳어있었다. 모든 게 끝났다.
두 눈마저 감겨있었다.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이제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한 것일까? 앞으로는 결코 다시 보지 않으려 작정한 것일까?
4월 24일 의식이 없는 가운데 욕지거리를 마구 쏟아내던 마네는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가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뒤로 몇 차례 엄청난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끝에 4월 30일 마침내 눈을 감았다. 저녁이 시작되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허공에 가득한 봄 햇살이 힘차게 내리퍼부으면서 실내 구석구석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19시. 메리가 손수 골라 꽃병에 꽂아놓은 꽃들이 5월이 되자마자 막 꽃봉오리를 터뜨릴 찰나였다. 마네는 이제 더 이상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레옹만이 마네 곁을 지켰다. 레옹은 자신의 따뜻한 손으로 오랫동안 마네의 점점 차가워지는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네는 마침내 가느다랗게 내쉬던 숨마저 멈춰버리고 말았다.
향년 51세였다.
마네의 죽음에 예술가들은 비통해했다. 친구들은 가까이에서 마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레옹과 수잔, 베르트와 으젠, 귀스타브 그리고 프렝이 마네를 지켰다. 위렐 신부는 아침 마네에게 강복한 뒤에도 대기실에 앉아 마네의 죽음을 슬퍼했다.
뒤레와 드가 그리고 말라르메가 서로 협력하여 마네의 장례식을 어떻게 치를지를 상의했다. 마네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긴급하게 타전되면서 온 파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미술전람회 개막식 전날 마네는 화려한 죽음을 통해 죽는 순간까지 관전을 조롱해 마지않은 셈이었다.
그렇듯 마네는 이번에도 전람회에 출품할 작품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