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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Mar 22. 2021

잡지 매체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독일에서 1924년부터 발행되어 오던 그래픽 디자인 잡지인 "novum"이 폐간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novum은 내가 독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다는 동기를 주었던 잡지였고,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 학생 때 인턴으로 면접까지 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novum의 갑작스러운 폐간은 나에게는 특히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폐간의 이유는 역시나 계속해서 줄어드는 구독자와 판매부수의 감소에 의한 재정적인 이유였다. 디지털 시대에서 잡지 매체의 미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이, 종이 매체를 사랑하며, 여전히 책이나 잡지를 많이 읽는 국가인 독일에서, novum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우수한 그래픽 디자인 잡지가 폐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어느 한 나라에서 발행되는 잡지의 양과 종류, 그리고 그 퀄리티를 보면 그 나라가 어떤 분야에 특히 특화되어있으며, 그 나라 국민들의 문화적, 사회적 또는 생활의 관심사나 교양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잡지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의 독자들의 지적인 니즈가 다양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 시절 한 학기 정도 이탈리아 밀라노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는데, 같은 유럽권이었지만 독일에서보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과 예술, 패션분야에 퀄리티 좋은 잡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반면, 독일 같은 경우에는 철학, 인문학 분야의 잡지들이 많이 간행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실 한국의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잡지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온갖 종류의 잡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잡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문화와 생활 속에 훨씬 더 깊이 들어와 있다.


잡지는 책과 같은 단행본과는 다소 다른 성격을 띤다. 잡지는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출판물로서 시간적 시대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단행본이 전문적인 정보를 일회적으로 전달한다면, 잡지는 전문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서 전달한다. 나는 내 분야나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와 같은 정보들을 잡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얻는다.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잡지는 나의 교과서였고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러한 정보나 트렌드는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접할 수 있지만, 넘쳐나는 정보들로 인해 기억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종종 잘못된 정보들을 접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잡지는 편집자들이 트렌디하면서도 중요한 핵심 정보들만을 엄선하여 정리해놓은 매체다. 또한 잡지는 아카이브의 역할을 한다. 특정한 분야에서 발행된 잡지는 10년이고 20년이고 한 데에 모아놓을 수 있다. 내가 어떤 특정한 시대에 자료를 원한다면 그때의 발행된 잡지를 손쉽게 꺼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러 시간을 걸쳐서 발행된 잡지들의 전체는 해당 분야에 관한 하나의 거대한 책, 하나의 역사서가 된다. 그렇기에 잡지는 책만큼이나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매체이다.


하지만 잡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많은 잡지사들이 전자책의 형태로 잡지를 간행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잡지를 사랑하고, 잡지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다. 사실 온라인 매체로는 얻지 못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의외로 많다. 온라인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우리 머릿속에 지속시킬 수 없으며, 특히 요즈음은 맞춤 기능을 제공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오히려 제한된 분야의 정보만을 접할 수밖에 없다. 다시 보고 싶은 정보를 아무리 웹사이트 북마크를 통해 저장해놓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나중에 다시 찾아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정보들은 끈기를 가지고 오랜 시간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잡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 우리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키며, 특정 분야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흥미를 지속시켜준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잡지라는 출판물이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정보전달매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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