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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Jul 13. 2021

예술의 과거, 예술의 현재

전통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는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지며 꽉막힌 사람들로 치부하는 경향이 종종 있다. 그럼 전통이라는 단어 대신에 레트로, 오마주, 향수, 추억, 빈티지 그리고 리메이크라는 단어들을 쓴다면 어떨까? 기본 의미는 전통과 비슷한데도 대체로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특히 레트로감성이 유행하고 있는 요즈음에는 이 단어들이 오히려 트렌디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전통과 이러한 단어들의 차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만큼 정말 큰 것일까? 사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전통이라는 용어 자체를 긍정적인 가치평가 보다는 시대착오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사용하는게 아닐까.


예술과 미술, 그리고 디자인과 관련해서 전통을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전통은 아주 큰 가치를 갖고 있다. 여기서 전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예술이나 디자인 분야에서 과거는 현재를 있게하는 조건이고 더 나아가 미래를 생성하는, 우리가 봐도 봐도 끝없이 다시 봐야하는 그러한 것이다. 현재는 전통의 재해석이며, 미래는 그러한 현재의 재해석일 것이기 때문이다. 유행은 정확히 말하면 돌고 돈다기 보다는 과거의 것을 현시대에 맞게 계속해서 재해석하는 과정인것이다. 과거는 현재로 가는 관문이다. 우리가 전통을 구시대적인 산물로만 여기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지금 현재의 예술과 디자인도 절대 제대로 볼 수 없다.


전통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현대의 예술과 디자인에서 전통의 흔적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 풍성하게 현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말그대로 아는 만큼 더 보이기 때문이다. 그 앎이란 과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록하는 아카이브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라라랜드'를 만든 감독은 그 영화에 대해 프랑스의  감독 자크 드미의 1964년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바 있다. 촬영기법이며 색감, 음악 까지도 과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영화 뿐만아니라 패션, 회화, 건축 그리고 디자인의 영역에서 이러한 사례들은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나도 예술과 디자인을 했을 때 현대거장들의 작품을 많이 참고하고 모방하곤 했었는데 결과는 하나같이 조잡하고 조야했다. 분명 유명하고 좋은 작품을 모방한 것인데 나의 작품은 왜 이리도 초라한지 참 알길이 없어 답답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모방한 작품 역시 전통에 대한 모방이었으며 그 전통에 대한 작가만의 재해석이었는데, 나는 그 작품안에서 그 전통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모든 좋은 작품들 안에는 전통이라는 디테일이 숨어있는데, 나는 그 디테일이라는 핵심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것들을 모방한다 한들 좋은 작품이 나올리 없지 않겠는가. 현대의 많은 거장들이 과거에서 영감받았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예술에서 새로운 사조가 생길때는 종종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반대하고, 거부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과거를 부정하고 폐기함으로써만 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있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가 과거에 대한 지양이라면 그 과거가 무엇이었는지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에 대한 부정인지도 모른채, 그냥 무턱대고 부정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전통은 현재의 뿌리와 같은 것이다.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우리가 거부한 전통들이 언제 또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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