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도이그와 에드워드 호퍼
현대 예술에는 수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있지만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작품들은 극히 드물다. 예술이 우리를 꼭 위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예술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예술이 자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하고 또 그 안에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많은 조형 예술작품들 중 특히 회화를 통해서 위로를 받곤 했다. 건축, 조각, 사진 그리고 미디어아트 등 많은 조형예술의 장르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나를 위로해주는 강력한 힘은 없다. 몇몇 사진 예술을 통해서는 위로를 받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마음을 울릴 정도로 깊이가 있는 위로는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던 두 개의 그림과 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회화들은 사실 모두들 한 번쯤은 보았을 유명한 그림들이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상반된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나 역시 각각의 작품에서 위로를 느꼈던 포인트가 서로 사뭇 다르다.
첫 번째 작품은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인 Peter Doig(피터 도이그)의 "Gasthof zur Muldentalsperre"이라는 작품이다.
흔히들 피터 도이그의 작품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를 그리는 독특한 풍경화라고 말한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수식어들을 뒷받침해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어딘가에 있을법한 혹은 언젠가 한 번은 봤을법한 풍경 같지만 이 세계에 실존하는 장소가 아님은 당장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소름이 끼쳤고 동시에 눈물이 날 정도로의 따뜻함을 느꼈다. 가만히 서서 나의 힘듦을 다 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의 따뜻한 눈빛이, 어두운 밤 호숫가에 오로라처럼 빛나는 저 하늘이 나를 위로한다. 하늘처럼 빛나는 땅까지도 -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땅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언뜻 두 남자는 저승사자처럼 나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돌담길은 저승으로 가는 관문이며, 저 형형색색의 돌들은 이곳이 더 이상 이 지상의 현실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만 같다.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삶의 끝인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대적으로 지금의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반대로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위로와 힘을 느끼기도 한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저 풍경은 나를 슬프게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감미로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언제나 애매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리움"이라는 이 감정이 나를 슬프게 위로한다. 그것은 과거의, 지나간 어떤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워할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그리움이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미래의 나의 죽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죽음이,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가 기이하게도 위로가 되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나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의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두 번째 작품은 미국 출신의 작가 Edward Hopper(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라는 작품이다.
이 작가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고독함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이다. 좀 전에 소개했던 작가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작품에서는 내가 자주 보던 그리고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장면들을 보게 되니 말이다. 이 그림은 특히 유명한 작품이어서 어떠한 선입견 없이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이 작품을 감상하기도 전에 작품을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너무 확실해서, 혹은 너무 많이 들어서 꼭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감정을 느껴야만 한다는 감상을 강요받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이 때로는 쿨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꼭 음악 중에서 숨은 명반, 명곡을 찾았을 때 내가 뭐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듯이 말이다.
이 작품은 외롭고 힘든 사람이 너만 있는 게 아니라며 나를 위로해 준다. 아무래도 현대인들은 사람에 치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제는 누군가와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혼자가 되면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와 비슷한 류의 슬픔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위로를 얻는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면 나는 너무 행복한 연인들에게서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누군가와 헤어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듯이 말이다. 그림에서는 술집 안에 총 네 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 명은 뒷모습만 보이고, 두 사람은 앞모습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옆모습이 보인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한 공간에 있다. 사실 자세히 보면 그림 속에서는 아주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누구도 절규하지 않고 울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다들 슬퍼 보이고 쓸쓸해 보인다. 현대인의 삶이 그렇다. 아주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없는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쓸쓸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가끔은 미치도록 사람들을 슬프게 하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적당히 고독하고 이유 없이 우울한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에 위로가 된다. 위로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차가운 위로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