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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Sep 20. 2022

디자인은 발전 하고 있는가

아름다움이 사라진 디자인

모든 직장인이 그럴 테지만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자기 계발은 필수적이다. 디자인 트렌드가 워낙 빨리 변하기도 하고 새로운 디자인 툴이 생기기도 하며 디자인적인 방법론도 많기에 따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이 분야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주말에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 디자인과 관련된 브런치 글을 읽기도 하고, 요즘에는 어떤 디자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툴이 새로 생겼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디자이너에게 어떤 역량을 요구하게 될 것인지와 같은 것들을 알아본다. 하지만 찾다 보면 정말 공부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님을 느낀다. 코딩이나 데이터 분석의 영역까지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물론 이 경우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디자이너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런저런 영역들을 알아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최신 기술을 알게 되고 시야가 넓어진다.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이 나오면 빨리 현재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적용하고 싶기도 하다. 더 체계적인 환경에서 더 나은 디자인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알아야 하고 새로 배워야 할 것들이 생긴다. 결국 내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관심에도 없던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배가 산으로 가고야 만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사공"이 전혀 많지 않은데도 배가 산으로 간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디자이너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기술적인 부분들이 언제나 많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꼭 전문가처럼 되지는 않아도 해당 분야나 기술에 기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통찰력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에 있어서 너무 한쪽 부분만, 그러니까 기술이라든지 툴이라든지 프로그램과 같은 측면에 있어서만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은 심미적이고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부분들을 다 가지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디자인의 기술적인 부분은 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디자인 싱킹, 시스템, 방법론, 소프트웨어의 발전 등이 디자인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디자인의 심미적인 측면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어떤 디자인을 보든 다 비슷하고, 특히 UI 분야는 로고와 컬러를 제외하면 거의 똑같다. 요즘 보는 거의 모든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에 대체로 정체되어 있다. 2020년, 2021년 그리고 2022년의 그래픽 디자인 트렌드를 검색해보면 거기에 쓰이는 용어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시각적으로는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당장 알아챌 수 있다. 3D 효과와 뉴모피즘 정도가 아마 심미적인 측면에서의 유일한 발전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컴퓨터 상의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일 뿐이다.


디자인이 예술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숙련을 강요하다 보면 자연히 디자이너에게 예술적인 영감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창의적이기를 그치고 단지 새로운 기술만 습득하기에 바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도 여전히 디자이너가 필요한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디자인 템플릿만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회사도 많다. 이 경우는 디자이너가 필요 없다. 단순히 디자인 툴만 다룰 줄 아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보통 미래 공상과학 영화를 보면 미래 사회의 건축이나 인테리어는 극단적으로 미니멀한 것으로 연출되고, 비행기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따서 둥글게만 그려지고, 색상은 흰색, 회색 혹은 검정으로만 되어있다. 미래 사회는 매우 차갑고 깔끔하게 그려진다. 그런 영화에서 미술적인 요소들은 오직 미래의 기술적인 진보만 염두에 두고 연출되는 것 같다. 예술적이고 심미적인 측면은 완전히 배제하고 말이다. 요 몇 년 동안 디자인 분야에서의 발전을 본다면 그런 인간미 없는 차갑고 삭막한 세상이 실제로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기술 발전이나 진보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에서 예술성 그리고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디자인이 오로지 컴퓨터 기술적인 요소만을 추종하고 끌려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우리 삶 속의 예술이다. 디자인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만나는 곳이다. 디자인의 예술적인 성격은 디자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근거다. 디자인에서 기술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예술적인 측면이 함께 가지 못한다면 세상에는 다 비슷하게 생긴 물건, 다 비슷하게 생긴 웹사이트와 앱만 있게 될 것이며, 어쩌면 우리 인간 모두가 다 아무런 개성 없이 비슷하게 되어갈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가 여느 공상과학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런 병적으로 깔끔하고 미니멀하게 디자인된 미래에 살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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