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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켈리 Jul 03. 2024

[ep.19] 팔라스데레이에서 아르주아(5)

(2024/5/5) 함께였던 하루 

분명 혼자 걸을 때는

발이 너무 아파서

등산 스틱을 짚으며

느릿느릿 걸어다녔는데


디노, 벨렝, 니콜, 테헤와

우연히 함께 걷게 되면서

그들의 속도에 맞춰 힘차게

걸음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대화하면서 걷다 보니

발이 아픈줄도 몰랐다.

아무래도 온 신경을 영어 듣기와

말하기에 쏟아서 발이 아픈 것을

인지할 새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걷는게

재미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과 걷다가

내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이게 뭐지? 하고 궁금해했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아래의 그림과 같은

건축물을 자주 볼 수 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건축물

하도 자주 보이니

이게 뭘까 궁금증이 생겼는데

이들과 같이 걷다가 또 이게 나와서

혹시 이게 뭔지 아냐고 물어보니까


니콜이 하는 말이

자기도 누군가가 알려준건데

그 누군가는 처음에 저게 혹시

무덤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옛날에 옥수수 저장 창고로 쓰였고

쥐가 옥수수를 먹을까봐

저렇게 높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디노는

대만에는 저런식으로 생긴

무덤이 있다고 말했고,


작년에 대만 여행가서

저런식으로 생긴 무덤을 봤던 나는

나도 저게 무덤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참 동안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걷다가

니콜이 "우리 오늘 저녁을 같이 먹자!"라고

제안을 하였고, 우리 모두는 "좋아!"를 외쳤다.


우리 중 유일한 스페인 사람인 벨렝이

핸드폰으로 맛집을 찾아 전화로 예약을 했고,

니콜은 이제 동생에게 가봐야 한다고

이따 보자며 빠른 걸음으로 우릴 떠났다.


아르주아에 가까워져 갈수록

하늘이 점점 맑아지면서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례길을 걷는 벨렝의 멍멍이 레이와 멋진 풍경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을 하며

중간에 잠시 그 풍경을 즐기기 위해

다같이 길에 앉아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

그 때 내가 순례길 첫날부터 봤던

미국인 3대(할아버지, 딸, 손녀) 가족이

지나갔고, 우리와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중 손녀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였는데

할아버지한테 도착하려면 얼마 남았냐고

물어보면 매번 3마일 남았다고 하신다며,

우리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는 그 손녀의 말이 넘 웃겼다. 어느 나라나

도착 지점까지의 거리를 줄여서 말하는 것은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지점은

진짜로 마을까지 3마일이 남은 지점이었고,

서로를 응원하며 힘을 내 걷다 보니

어느덧 아르주아에 도착하게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 아르주아

벨렝, 테헤, 디노는 같은 숙소에 묵고

나는 다른 숙소라서 이따 식사 장소에서

보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다.


숙소에 도착하니 동키로 보내놓은

내 배낭이 로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르주아 숙소, 동키로 보내 놓은 내 배낭

숙소 입구를 본 순간

정말 감격스러움이 밀려왔다.

오늘 거의 10시간 만에

이 곳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이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이 걸은 날일 것이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또 절뚝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이 숙소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부킹닷컴으로 22유로에 예약한

크루즈 데 카미노스인데

깔끔하고 붐비지도 않고

빨래 말릴 곳도 있어서 좋았다.



근데 웬걸,

오늘 아침에 팔라스데레이 숙소에서

대화를 나눴던 미국 사시는 한국인 분이

이 방에 계셨다!

우리는 서로 대박사건!!을 외치며

오늘 하루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틀 연속 같은 숙소의 같은 방에

묵게 된게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나는 저녁 식사 약속에 가기 위해

서둘러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갔다.



맥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햄버거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니콜은 우리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며

수첩에다가 적어갔다.


우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이야기 등

글로벌적인 대화도 나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의 원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술을 마시면서 영어로 대화하다 보니

나는 한 85% 정도 알아먹은 것 같다.

내가 말을 많이 안 하고 듣기만 하니까

니콜이 나한테 너는 좀 더 적극적이여야해!

왜 이렇게 수줍어!! 라고 말을 했는데

내가 수줍은게 아니라,

영어로 말을 못하는거야!!!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ㅋㅋㅋ


나는 발이 너무 아파서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식당에 갔는데

파스 냄새가 좋은건지

내 발이 푹신한건지 모르겠는데

벨렝의 멍멍이 레이가 자꾸 내 발이

베개인 줄 알고 그 위에 누워서 잤다.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음식이 잘 안 먹혀서

술만 마시고 햄버거는 거의 남겼더니

서빙해주신 분께서

왜 이렇게 많이 남겼냐고 말씀하시며

서운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나 대학생 때 파스타집에서

알바했을 때 손님들이 음식 남기면

음식 만드신 이모가 엄청 서운해하셨는데

그때가 생각났다.

뭔가 정서가 우리나라랑 비슷한 느낌이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고, 더치 페이를 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식당에서 찍은 단체사진

오늘 하루는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매우 어메이징한 하루였다.

정말 행복했다.

내일은 또 무슨일이 펼쳐질까?


내 생애 최고로 많이 걸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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