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대만 여행 가요. 맛집 추천해 주세요."
많이 묻는 질문이지만 대답하기 참으로 어렵다.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낯선 향에 대한 민감도가 어떠한지, 음식에 대한 모험심이 있는지, 그래서 다른 나라 음식을 평소에 가끔 즐기는지, 대만 여행이 처음인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대만 여행이 처음이며 다른 나라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딘타이펑과 같은 누구나 아는 유명 식당을 추천한다. 설령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필수 코스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으며, 입에 맞지 않는 원인을 잘못 소개해 준 내가 아닌 입맛이 까다로운 자신에게서 찾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원망을 경험한 끝에 알게 된 방법이다.
대만 여행은 처음이지만 다른 나라 음식을 즐기는 사람은 이미 음식이나 식당에 관한 여러 정보를 조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식당들을 조사했는지 먼저 물은 후, 샤오롱빠오, 우육면, 훠궈 등 '대만'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음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좋아하는 식당을 소개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소개한 곳이 아닌 자신이 조사한 식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소개할 때 마음이 편하다. 입맛에 맞지 않아도 자신이 선택한 곳이므로 나를 원망할 일은 없다.
대만 여행을 몇 차례 다녀왔으며 다른 나라 음식을 즐기는 사람에게 비로소 나의 진짜 속마음을 얘기한다.
나는 샤오롱빠오를 참 좋아한다. 대만 타이중 동해대학 서쪽 끝 작은 숲, 조용한 그 숲을 나오자마자 "부릉부릉. 부아앙!" 스쿠터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이곳은 '동하이비에슈(東海別墅 동해 별장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대학 근처 번화가이다. 20년 전 나는 이곳의 한 골목 원룸에서 살았는데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샤오롱빠오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수시로 이 식당을 들락거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곳의 샤오롱빠오가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일상을 살았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중국어 강사를 하며 틈틈이 중국과 대만 여행을 다녔는데 어디를 가든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은 샤오롱빠오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늘 2%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2020년 딸아이와의 대만 한 달 여행 동안에 그 의문이 풀렸다.
대만에서 돌아온 지 20년 되던 해인 2020년 2월, 열세 살 딸아이와 함께 한 달간 대만을 여행했다. 타이베이에서 일주일 여행하고 타이중으로 내려와 동하이비에슈에 있는 한 숙소에서 3주를 지냈다. 20년 전 살았던 골목에 있는 숙소였다. 동하이비에슈에 도착한 첫날 20년 전 즐겨 먹었던 샤오롱빠오 가게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식당 외에도 왓슨스, 제과점, 제과점 옆 편의점, 편의점 옆 만두집, 무한 리필 우육면 가게, 시엔차오똥 가게 등 그대로 있는 가게들이 너무나 반가웠다(감격에 겨워 열변을 토하는 나의 옆에서 지루해하던 딸아이의 표정이 생생하다).
홀린 듯 식당 안으로 들어가 샤오롱빠오를 주문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샤오롱빠오 하나를 조심스럽게 입 안에 넣었다.
"바로 이 맛이지!"
"맛있긴 한테 완전 맛있는 건 아닌데? 몇 년 전 마카오에서 태풍 때문에 호텔에 갇혔을 때 호텔 식당에서 먹었던 샤오롱빠오, 그게 훨씬 맛있어!"
그때 깨달았다. 늘 부족했던 2%는 바로 '추억'이었다. 아무리 비싸고 객관적으로 맛있는 샤오롱빠오도 이곳의 추억까지 재현할 수 없었기에 나에게는 늘 아쉬웠던 것이다. 반면 딸아이에게 가장 맛있는 샤오롱빠오는 마카오 태풍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그것이었다. 마카오 여행 중에 강력한 태풍이 불어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간 적이 있었다. 호텔에서 문을 봉쇄했기에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먹었던 샤오롱빠오가 참 맛있었다. 이것이 이제 딸아이에게 맛있는 샤오롱빠오의 기준이 된 것이다.
"당신만의 추억이 깃든 음식을 찾으세요."
누군가 나에게 대만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맛있는 대만 음식이 어떤지 몰라요. 대만 음식의 맛에 대한 기준이 없는 거지요. 대만 사람들 입맛에 맛있는 음식이 당신의 입맛에도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당신 입맛에 맞으면 맛있다고 느낄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음식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배우 정유미는 한 인터뷰에서 여행지에 도착하면 반드시 향수를 구입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타이베이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만두가게가 눈에 띄었다면 바로 자전거를 세우고 먹어보세요. 새벽에 일어나 호텔 방 커튼을 걷었을 때 건너편에 불 밝힌 조식 가게가 보인다면 주저 없이 나가 딴빙과 또우장, 빠오즈*를 포장해 와서 여행 동료들과 나누어 먹어보세요.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 또 어때요?
외국 여행객들로 붐비는 명동의 칼국수집만 맛있는 게 아니지요. 동네마다 기가 막힌 칼국수집, 삼겹살집 하나씩은 있잖아요. 대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블로그에 올라와 있지 않은 숨은 고수의 맛집들이 곳곳에 있어요.
사랑은 사고처럼 찾아오는 거라잖아요. 그것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입에 짝 달라붙은 음식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또 어떤 건 그 자리에서는 그저 그랬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나기도 해요. 여행을 마친 후 어느 순간 그 맛을 찾아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딴빙(蛋餠), 또우장(豆䊢), 빠오즈(包子): 조식으로 즐겨 먹는 것으로 각각 계란이 들어간 전(둘둘말이), 콩물, 찐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