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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ug 23. 2023

클론, 구준엽, 그리고 나

1999년 12월 24일 저녁. 대만 타이중 동해대학 강당 옆 농구장. 크리스마스 파티에 한국어 노래가 꽝꽝 울려 퍼진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산으로 올라가 소리 한 번 질러봐. 나처럼 이렇게 가슴을 펴고..." 


그렇다. 클론이다. 클론의 노래에 동해대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비록 가사를 다는 모르지만 후렴만큼은 큰 소리로 따라 부른다. 쿵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낯설다. 이게 뭔 일인가 싶다. '한국에 관심도 흥미도 없더니 클론 노래에 이런 반응이라고? ' 그러고 보니 유일한 대만 친구 '쯔치'가 얼마 전에 "백지영을 아냐?" "한국 드라마 삽입곡 무슨무슨 노래를 아냐?" 묻긴 했었다. 하지만 '쿵따리 샤바라를 빠빠빠빠'를 신나게 따라 부를 정도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기숙사 섬'에 살고 있는 데다가 룸메이트들은 변함없이 나에 대한 무관심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동해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 젊었구나, 우리.  


당시에는 '인간미가 없다' '너무 개인주의다'라고 흉도 많이 보고 서운해하기도 했다. 지금은 단지 문화차이일 뿐이었음을 이해한다. 그저 각자 자신의 삶에 열심이었던 어린 학생들이었을 뿐이었다. 한 명은 공부만 하느라 밥도 책상에서 먹었다. 나뿐 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있는 그녀의 뒷모습만 기억난다. 한 명은 리니지 게임만 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살았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게임만 하더니 결국 유급당했다. 한 명은 연애만 했다. 매일 밤마다 통금 시간 직전에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덜 갖는 그들의 방식 그대로였는데, 나는 낯선 곳에서 애정 결핍에 걸려 관심을 갈구했던 것이다. 




클론 덕에, 그리고 한국 드라마 덕에 어학연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만나 보니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 아가씨였다. 동해대학에서 버스를 타고 학생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스쿠터를 타고 마중 나왔다. 언니와 형부가 노래방(가라OK)을 크게 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일이 바빠서 수업을 규칙적으로 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과외비를 주급으로 주겠다고 했다. 가뭄에 내린 단비였다. 


IMF 직전 아버지가 주식을 많이 사셨다. 대출까지 받아 사셨다고 했다. 결국 서울에 작은 전셋집을 마련해 놓고 부모님은 26년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귀향하셨다. 부모님이 마련한 집에서 살며 계약직으로 일하던 중 기회가 닿아 온 대만이었다. 알뜰살뜰 살아야 했다. 핸드폰도 없이 살았다. 주급이든 뭐든 적은 돈이었지만 수입이 생겨서 숨통이 트였다. 덕분에 어학연수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어학연수가 끝나고 비록 대학원 과정을 하지는 못했지만(하고 싶었으나) 지금까지 중국어 강사를 하고 있으니 클론 덕 맞다. 


클론이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자, 오늘부터 한국에 대한 호감도 상승!" 뭐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내 주위의 환경은 변함이 없었고 애정결핍에 따른 내적 헛헛함은 계속되었다. 대만인들의 일본 사랑에 대한 질투심은 이후에도 몇 년간 지속되었던 것 같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2004년 정도였던 것 같다. 어학연수 후 3,4년 만에 타이베이를 방문했을 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느꼈다. 


"광쪼우, 이게 무슨 일이냐? 왜 이리 친절한 거야?"
"너 한국 사람이잖아."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나의 문의에 응대해 주었던 고객센터 직원과의 대화 이후(지금의 대만과는 달리 당시에는 모두 친절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친구 광쪼우와 나눈 대화다. 


지금은 "대만 마트에 갔더니 한국 라면 있더라" 같은 얘기는 "한국에 왔더니 쩐쭈나이차(버블티) 팔더라"라는 말과 동급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안성탕면 덕분에 내가 사는 '안성'이라는 소도시까지 안다. (안성시는 이를 활용하여 해외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최근에는 한국인들의 대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대만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도 없고 일본인만 좋아한다고 투덜대긴 했으나 사실 그건 우리도 매한가지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만은 어느 나라 말 써?"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대만인 유학생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의 소녀시대' 같은 영화나 드라마가 젊은 층에서 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최근 드라마 '상견니'는 초등학생도 다 알정도로 유명해지더니 '너의 시간 속으로'라는 이름의 한국 드라마로 리메이크하여 방영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양국의 심리적 거리감마저 줄어들었다. 클론의 멤버인 구준엽이 대만 배우 서희원과의 결혼을 하면서 대만 사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은 아니지만 올해 들어 대만으로 여행 가는 한국 사람들이 더 늘었다. 이미 대만 여행객 1위 국가가 한국인데 최근에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대만을 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치 나만 보는 일기와 같던 나의 '대만 여행'에 관한 글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클론 덕에 대만 어학연수 당시 비록 크지 않은 돈이지만 벌 수 있었다. 요즘에는 대만에 대한 관심이 커져 나의 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래저래 클론과 구준엽 덕을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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