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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Nov 08. 2023

"고려인들, 그 사람들 모여 있으면 무서워..."

"고려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아휴, 그 사람들 모여있으면 무서워!" 


추석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다. 아버님 댁은 '6070 거리'라고 불리는 거리 한편에 있다. 6070 거리. 좋게 말하면 옛 정취 물씬 풍기는, 사실대로 말하면 안성에서 오래된 또는 낙후된 마을임을 단어에서 추측할 수 있다. 예전에는(아마도 6,70년대일 것으로 추정됨) 소를 사고파는 '우(牛) 시장'이 있어 돈이 흘러넘치는 안성 최고의 번화가였다고 한다. 지금은 오래된 대장간과 야릇한 술집 간판에서만 옛 영화의 흔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 마을의 임대료가 저렴하다 보니 자연스레 외국인 거주자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특히 고려인들 수가 급증하였는데 이들이 무리 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섭다고 하신 것이다. 왜 무섭다고 말씀하셨는지 알 것도 같다.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한 손에는 맥주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피우며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움찔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도 식사 후에 서너 명씩 모여서 담배를 피운다. 아버님 역시 지금은 금연에 성공하셨지만 예전 흡연하던 시절에는 그러하셨을 것이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나의 남편 역시 소위 '식후 땡'을 즐길 것인데 그들의 담배에 왜 '무서움'을 느꼈을까? 




다문화센터에서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을 위한) 한국어 초급반' 수업을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었다. 15명 정원인데 쉬는 시간이면 교실에 2~3명 남고 모두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20대부터 60대까지, 성별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이 흡연을 즐긴다. 


"선생님은 담배 안 피워요?"
"네, 저는 안 피워요."
"왜 안 피워요? 이렇게 맛있는데..."


어느 날의 50대 초반의 여성 학습자 한 명과의 짧은 대화다.  이 짧은 대화 후 담배에 대한 고려인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는 흡연은 껌 씹는 것과 비슷한 그저 기호품 중 하나일 뿐이다. 


아버님과 가족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어쩐지, 남자나 여자나 다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더라고."
"이제 이해가 좀 되네"


"우리도 예전에 버스에서도 담배 피우고 그랬잖아."

등의 대화가 이어졌다.


흡연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들을 '무섭다'라고 느끼는 감정은 알고 나면 덜 낯설어지고, 덜 낯설어지면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이 줄어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가족이나 친구들은 "걔가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 못 만나서..."라고 애써 이해해 주려고 하면서도 낯선 문화의 사람이 모여 낯선 언어로 담배를 피우며 화기애애 이야기 하는 모습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제 아버님은 고려인들이 흡연하는 모습을 볼 때 나의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며, 무섭다는 감정은 들지 않거나 예전보다는 적게 들 것이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모르는 것,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정보를 늘리고 접촉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 '미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없애고 다문화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 아니 갈등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법이라는 말, 그 말이 참이었다. '교류'만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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