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앞으로 이런 증상은 더욱 심화될까? 아니면 어느 정도에서 그칠까?!
내가 어릴때는 나이키, 아디다스도 명품축에 속했다. 중학생 아이들은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있느냐 아니냐가 그야말로 부의 척도나 마찬가지였고 빚까지는 아니지만 아이가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없는 살림에 무리를 해서 명품 운동화(?)를 사주는 부모님들도 존재했다. (그 당시 나이키는 10-20만원대 가격이었다. 놀랍게도 지금하고 큰 차이가 없다. 그만큼 공산품의 가격이란 올리기가 어렵고 특히 글로벌 브랜드는 더 하다) 어디서 일어난 일이냐구요? 믿기지 않겠지만 강남 한복판인 압구정동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요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젊은 사람들은 그저 웃고 말 것이다. (한 10여년전 등골브레이커라는 이름으로 노스페이스 점퍼가 불티나게 팔렸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역사는 돌고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20대때는 코치, 마이클코어스같은 미국브랜드 역시 명품축에 속했다. 그런데 20-50만원대의 가방이 여전히 그 가격을 유지하는 동안 (그 가방들이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100만원대 제품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심리란 그 돈이면 조금 더 보태 더 비싼 브랜드의 가방을 사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물가는 엄청난 속도로 뛰었고 어느순간 사람들은 미국제품들을 준명품이란 이름으로 부르더니 그마저도 잠시, 언젠가부터 하위브랜드로 포진시키고 말았다. 사실 그 가격대의 가방을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음먹기의 문제일 뿐. 미국가방은 가죽질도 좋고 튼튼한데 유럽 가방브랜드 디자인을 너무 쉽게 도용하기 때문에 정체성이 모호하다. (누가 미국인이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는지 모르겠다. 영화만 봐도 헐리우드 영화는 너무 뻔해서 결말이 예측되는데 말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명품이란 유럽 브랜드. 그 중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만 포함시키는 것으로 포지셔닝되고 있다. 내가 30대때는 루이비통이 여러 브랜드를 흡수합병하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특히 루이비통 붐이 일어나다시피 했다. 비슷한 금액대라면 가급적 큰 가방을 사는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때문이었는지 우리나라에서 팔리던 가방의 대다수는 거의 빅백위주였고 가성비좋은 가방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루이비통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였던 네버풀과 스피디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3초백'이란 말도 등장하게 되었던 것인듯. 일본에서 먼저 유행된 그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루이비통을 들게되자 루이비통측에서 가격을 올리게 된다. 루이비통 가격이 샤넬과 거의 비슷해지거나 역전하는 사례도 생기자 루이비통을 자신들보다 한수아래로 생각했던 샤넬이 급격한 가격인상을 단행하게 된 것도 그때쯤이다. 샤넬은 예전부터 그닥 품질이 튼튼한 브랜드는 아니었다. 오죽하면 샤넬우산은 비올때 쓰면 절대 안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가방은 물론 신발도 살살 신어야했고 비라도 맞으면 큰일나는 브랜드가 바로 샤넬인데 (내 양가죽 지갑도 정말 아껴들었는데도 스치기만 해도 스크래치가 날 지경이었음) 하지만 명품시장이 커져서 많은 사람들이 명품의 세계로 입문을 하게되자 역설적으로 그러한 점이 샤넬을 외려 돋보이게 만들었다. (섬세하기 때문에 정말 돈많은 사람들이라야 샤넬을 들 수 있다는 식의) 그래서 한 15년전부터 예물백이라는 미명하에 결혼식때 샤넬을 사는것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에는 500만원정도면 살 수 있던 샤넬백이 현재는 1000만원은 줘야 살 수 있으며 2.55와 클래식류로 거의 한두가지 종류이던 샤넬백 역시 여러가지 형태의 백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중국인이 폭발적으로 샤넬백을 휩쓸어가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유추를 해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음)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은 샤넬하고 에르메스 정도만 인정해주는 분위기고 아직까진 에루샤라고 루이비통도 포함이 되긴 하지만 솔직히 루이비통이 탈락할 날이 그다지 멀지않아 보인다. 샤넬은 개런티카드를 넘어서 칩을 가방에 심기 시작했고, 이것은 훌륭한 정책이라고 판단된다. (에르메스도 그런지는 잘 모름)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죽만 놓고보면 프랑스보다 이탈리아가 더 낫다. 실제 가방이 튼튼한 걸로는 미국 다음은 이탈리아라는 얘기다. 프라다, 페라가모, 미우미우 등 이탈리아 브랜드는 가죽이 잘 닳지않고 설사 오래 쓰더라도 그 특유의 질감이 살아난다. 심지어 똑같은 양가죽을 써도 이탈리아 브랜드가 프랑스 브랜드보다 더 오래쓴다. (에루샤는 전부 프랑스 브랜드임) 그런데 튼튼할수록 명품브랜드 순위에서 뒤로 밀리니 참 명품의 세계란 알 수가 없다. 일생의 한번이라며 결혼할때 샤넬을 사놓고 막상 쓰자니 아까워서, 또 수납력이 부족해서 (샤넬백은 정말 테트리스처럼 수납해야한다) 아기라도 낳는순간 무조건 장롱행이다. 요즘은 핸드폰도 안 들어가는 초미니백이 유행이더라.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명품을 사는 이유는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재력을 과시하고 싶을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진다. 내 통장을 까서 현금보유량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물건을 사서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남들(아주 먼 남은 해당없음. 한국인은 나랑 가까운 지인이 하는건 나도 해야됨)이 하는건 나도 해야되는 한국인 특성상 앞으로도 명품의 인기는 계속 고공행진을 할 것이다. 언제까지?! 샤넬의 가방가격이 에르메스를 따라잡지 못하고 1000만원대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물가가 계속 올라서 마침내 샤넬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느껴질 때까지.
결국 이 모든것은 일종의 오징어 게임이다. 모두가 명품을 소유하게 되면 그 명품은 가치가 없는 것인데 과연 이 모든것이 언제까지 갈 지 모르겠다. 얼마전 킹카스라고 명품전문백화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산처럼 쌓여있는 샤넬백들은 오픈런을 해서 샤넬백을 산 사람들이 위탁판매를 하는 물건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기가 하강하자 그 곳은 물론 중고마켓에도 각종 명품들이 넘쳐난다. 현금부자들이 아파트를 줍줍하듯 또 누군가는 중고마켓에서 명품들을 줍줍하겠지. 집도 강남에서 30억쯤되는 아파트에서 살아야하고, 차도 외제차를 몰아야 하고, 샤넬이나 에르메스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고, 자녀들도 SKY에 가야하는데 그게 안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다. 물건에 매몰되면 다른것이 보이지않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그동안 명품의 세계에 빠져 한동안 힘들었는데 만족하는 마음과 가진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