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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런 Feb 09. 2021

미니멀리스트 보다 옵티멀리스트

소박함 또는 빈약함

 

6년 전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을 여럿 읽으며 최소의 삶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다 버리기 전에 다행스럽게도 또 다른 책에서 완급을 조절할 기회를 얻었다.


채워보지 못한 사람이 비우기부터 한다는 것은 체르니도 연주하지 못하면서 피아노부터 부수는 행위예술가처럼 어색할 수밖에 없다.

-김윤관 <아무튼 서재>



버리고 비우기를 반복하며 달려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 같았다.

가난이 아닌 간소한 삶이라고 만족(한다고 생각)하며 꾸려가던 살림에서 가끔은 누리지 못하는 경험의 빈자리를 느끼곤 했다. 그럴 때마다 결여로 인한 고통이 아닌 자발적인 아름다운 절약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킨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동안 옷을 신나게 버릴 수 있던 것은 실컷 사 모은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 상쾌함을 느끼는 것도 맘껏 어지럽혀 본 기억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채워보지 못한 사람에게 비우라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미니멀리즘 또한 하나의 취향일 뿐이고 다른 취향도 존중해 줘야 했다. 이미 미니멀 라이프가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상태에서도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며 균형을 잡고 싶었다.

버리고 공간을 비우면서 맛보는 홀가분한 느낌에 취해 정신없이 비우다 보면 가족들 물건까지 버리고 정리해 주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갈등을 겪은 이야기를 들었고 나 역시 거쳐간 경험이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운 게 또 생각을 바꾸는 거라서 사람이 순식간에 바뀌기도 한다.

단, 본인이 스스로 마음먹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 쉬운 손바닥 뒤집기를 다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다. 뒤집는 게 좋다고 옆에서 조언하고 애원하거나 강제할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그 강요가 오히려 서로의 관계에 악재로 다가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취향 나치가 되지 않으려면 미니멀리즘은 좋아하는 본인의 영역에만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좋은 걸 알고 따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혼자 묵묵히 자신의 공간을 꾸려가는 것이 낫다고 말이다.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이고 그로 인해 내 삶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오래 보인다면 굳이 옆에서 잔소리하지 않아도 자연히 본받고 따라 하게 될 것이다.

말보다 행동이 더 깊은 울림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니멀리즘을 경계하는 가족은 오히려 최소의 삶으로 가는 속도를 늦춰주고 고민할 시간을 벌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예를 들면 소파를 버리고 불편한 바닥 생활을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미리 멈출 수 있다. (바닥에 앉는 걸 그토록 싫어하는 나도 미니멀 라이프에 빠져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집안을 수시로 정리하면서도 아이의 방은 건드리지 않는다. 하루 종일 엉망이어도 실컷 어지럽히도록 그냥 내버려 둔다.

어렸을 때 내 방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질서와 혼돈을 모두 경험해보고 스스로 취향을 고른 것처럼 아이도 그런 기회를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소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스트는 모두에게 단 한 종류의 이상적인 삶을 제시하는 것만 같다.

때문에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도 아직 옷과 일부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당당히 "저는 미니멀리스트입니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가끔 생활용품을 여러 개 미리 구입해 놓을 때는 내 가치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엷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때는 단지 미니멀리스트라는 칭호를 유지하기 위해 작은 취향조차 포기하고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는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간소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무의식 속에선 여전히 빈약함이란 단어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작은 일탈도 용납되지 않는 (것만 같은) 최소의 삶보다 최적의 삶을 사는 옵티멀리스트(optimalist)가 되고 싶다.


optimalist (최적주의자) : 자신의 선택이 가장 나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


내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는 최적주의자를 지향한다. 시간과 공간의 낭비 없이 필요 없는 부분은 버리되 필요한 부분은 더없이 풍족하게 누리며 살고 싶다.

관심 없는 요리 관련 도구나 식자재는 과감히 줄이고 좋아하는 책과 노트는 잔뜩 마련해서 모두 사용한다. 금방 자라는 아이의 옷과 신발은 최소한으로 구비해 열심히 세탁해서 입히고 늘 붙잡고 있는 그리기 도구와 재료는 넘치게 사서 창의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빈약함을 간소함으로 위장하지 않고 진정한 간소함과 풍부함이 내가 원하는 만큼 공존하는 삶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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