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리감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나의 의도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어쨌든 그 덕분에 이전의 바꾸고 싶었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날들이 있다.
세수하지 않으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쇠고집의 모습(지금은 밤새 쌓인 눈이 녹을까 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곱도 떼지 않은 모습으로 아이와 함께 눈 세상을 보러 나간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십 번이고 갈아입었던 모습(지금은 어제 뭘 입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빨래가 되어 깨끗한 옷이면 감사하게 입는다.)
엘리베이터에서 혹시 누가 내게 인사라도 건넬까 싶어 앞만 보고 서서 얼음이 되었던 모습(지금은 아이에게 본이 되려 미소를 머금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등등… (너무나 많지만 지금 생각나는 게 이 정도다.)
이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후회하기보다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과정으로 여길 수 있게 된 것이 엄마라는 옷을 입은 뒤 내게 찾아 든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 결혼을 며칠 앞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엄마가 되면 뭐가 좋아?”
“결혼하면 뭐가 좋은지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결혼은 상상이 되는데 엄마가 되는 건 상상이 안 가서 물어보는 거야”
“뭐가 좋다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 전반적으로 좋은데 새로운 나를 찾아낸 기쁨이 있달까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은 순간들이 있어. 그런 순간들이 함께 데려오는 낯선 행복들이 있고…”
“그래 그럼 질문을 바꾸자 그럼 엄마가 되면 뭐가 힘들어?”
“음…. 이것도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 전반적으로 힘든데… 나를 잃어버린다는 느낌이 들 때 뭔가 너무 서럽고 갑자기 뜬금없이 눈물이 나오고 그래”
“너 지금 네가 말하고도 상당히 이상한 거 알지? 새로운 너를 찾아내서 기쁜데 이전의 너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서럽다니 이상해 이상해”
하마터면 온전한 정신으로 육아를 해나가는 순간들은 무척이나 드물다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긴 한데 엄마라는 옷은 꼭 입어보길 적극적으로 추천해!”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훗날 엄마가 될 친구의 모습을 축복한 그 날밤.
가만히 나의 ‘엄마라는 옷’을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침과 콧물눈물범벅 그리고 나의 분주하고도 서툰 움직임들이 남겨놓은 자국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맘에 든다.
옷에 몸을 맞추는 일은 참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옷이 날개라고 ‘엄마라는 옷’을 입은 나는 점점 포근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 가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예전의 나를 기준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옷에 더욱더 익숙해지면 아마 내가 좋아하는 무늬를 그려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고이 벗어 잘 접어두는 법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