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외근을 나갔던 날, 시청 쪽 업무를 마치고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으로 넘어갔다. 언제나처럼 피부의 적인 자외선을 피하려고 그늘이 조금만 보여도 이쪽저쪽 옮겨가며 걸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 어렸을 땐 어른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징크스가 있었다.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설이었다.
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아빠께 왜 그런 건지 여쭤보니 아마도 그때 당시 덕수궁 돌담을 따라 가면 법원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이혼 소송을 하러 가려면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가야 했다는 말인데 지금도 법원이 그대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걷다가 반가운 간판을 발견했다.서울시립미술관은 아주 오래전 엄마와 샤갈전을 보러 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작품보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줄 서서 구경하느라 힘들었던 생각만 난다.
코로나 때문에 운영 중지 중인 것은 아쉬웠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미술관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미술관을 나와 로터리를 지났다. 사실 로터리라는 명칭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Roundabout이라고 부른다. 로터리를 보자마자 예전에 호주의 퍼스 (Perth)로 출장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직원 넷이서 차 한 대를 렌트하고 내가 운전을 했는데 생전 본 적도 없는 roundabout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거의 대부분의 골목들이 그랬던 것 같다. 가뜩이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서 헷갈리는 마당에 처음 보는 시스템이 자꾸 나타나니 당황스러웠다. 뒤차, 앞차, 옆 차 모두 빵빵거리고 나 하나 때문에 그 일대가 교통 대란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결국 나 대신 인도네시아 직원이 운전을 하기로 했다. 호주와 똑같이 운전석이 오른쪽인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이 친구는 신호등만 보면 빨간불이건 녹색불이건 일단 멈추는 버릇이 있었다. 녹색불에도 우선 멈춤이니 또다시 여기저기서 빵빵 소리가 들려왔다. 뒤차가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대체 왜 자꾸 멈추는 거냐고 물어보자 자카르타에서는 아무도 신호를 지키지 않고 언제 어디서 누가 튀어나올지 몰라 교차로에서는 무조건 우선 멈춤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자카르타의 심각한 교통 체증 때문에 이렇게 속도를 내서 달려본 적도 없단다. 이래저래 난국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우리 모두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추억과 이야깃거리가 생긴 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