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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로하스 Polohath Dec 21. 2020

내가 이방인이었을 때

조수미가 지커 준 희망

IMF 외환 위기 당시 나는 미국에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은 이미 가족이 미국에 와 있었기에 환율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금수저 집안도 아니고 한국의 가족들이 안 먹고 안 쓰고 모아서 보내 준 돈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가난한 유학생들은 미친 듯이 올라가는 환율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좌절하며 학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즈음 내가 다니던 한인 교회의 큰 오빠뻘인 청년부 회장은 하루 종일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다저스 경기와 박찬호 뉴스에 매달려 살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그 오빠는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생활 스케줄을 박찬호 경기에 맞춰 바꿔가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오빠는 박찬호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요즘 박찬호랑 박세리 없이 버틸 수 있는 유학생이 몇이나 될 것 같냐고 반문했다.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도 그 느낌은 이해했다. 완벽하게.





한국에서도 우리나라 선수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 뛸 듯이 기쁘지만 남의 나라에 와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모습은 그저 기쁜 일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신앙이고 고단한 삶의 한줄기 희망이다. IMF 때였고 미국에 진출한 운동선수로는 거의 첫 세대였으니 이 두 사람이 주는 긍지와 기쁨이 오죽했을까.

그와 비슷한 감정을 나는 성악가 조수미를 통해 IMF 이전부터 느껴왔다. 골프, 야구와 마찬가지로 클래식 음악도 그 뿌리는 서구 문명이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고 설명하기 힘든 소외감이 있다. 게다가 기악이 아닌 성악이니 외국인으로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발음, 딕션은 물론 오페라 무대에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이질감까지 장벽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조수미는 정상에 섰다. 그것도 매우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프리마돈나는 당연히 나야,라고 말하듯 매끄럽고 우아하게.


그녀의 본명은 조수경이다. "ㅕ" 발음은 외국인에게 상당히 어려운 발음이라 나도 꽤 오랫동안 한국 이름을 고수하다가 결국 "ㅕ"가 들어가는 이름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연달아 겪은 뒤 영어 이름으로 개명하고 말았다. 모든 신분증과 여권에 영어 이름을 찍은 뒤, 조수미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는데 아차, 싶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조수미처럼 했을 텐데.


조수미는 개명은 했지만 여전히 한국인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외국 이름이 아닌 발음이 쉬운 한국 이름으로 개명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의 이름을 영어로는 유나라고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왜 그런 멋진 생각을 못했을까.

조수미는 발매하는 앨범마다 한국 가곡을 하나씩 넣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 조수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도 큰 기쁨인데 한국어로 부르는 한국 가곡을 듣고 있자면 그녀와 내가 한 핏줄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서울 음대를 다니다가 이탈리아로 유학 간 뒤 줄곧 이방인 생활을 해왔을 그녀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한국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 아렸을 그녀의 고국 사랑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해외에 있을 때 그녀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지만 정작 그녀 역시 해외에서 고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여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 유튜브에서 그녀의 2006년 파리 공연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폭풍 눈물을 흘렸다.

아베 마리아를 부르기 전, 그녀가 관객들에게 불어로 한 말을 누군가가 댓글에 영어로 번역해 놓았기에 그대로 가져와 다시 한국어로 써본다.


"제 아버지께서 며칠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곳 파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네요. 이것이 도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악가라면 이 곳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지금 이 순간 저와 여러분을 내려다보며 기뻐하고 계실 것이라고 굳게 믿어요. 오늘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못할 거예요. 이 공연을 제 아버지께 바칩니다. 아버지를 위해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부르겠습니다."

https://youtu.be/cqoP8rkNIsY



나같이 유약한 이방인들에게 무한 긍지와 기쁨을 주기 위해 한없이 강해져야만 했던 그녀, 조수미.

20년도 더 지난 내 어린 시절에 우러러보며 동경했던 그때 그 느낌 그대로 여전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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