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한 번도 전업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전업으로 사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맞벌이가 거의 없던 시절에도 나의 엄마와 이모들은 직장을 다니고 장사를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도 계속 직장 생활을 해왔고 이직하면서 생긴 공백 기간에만 잠깐 일을 쉬었다. 그나마도 부업이랍시고 매장을 두 개나 덜컥 오픈해 놓았기 때문에 공백 기간에는 아르바이트 직원들 대신 매장에서 직접 일하느라 완전히 일을 접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마칠 때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엄마가 우산 들고 학교로 마중 나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예고 없는 소나기가 하교 시간에 맞춰 갑자기 내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 초등학교 6년을 통틀어 서너 번 정도나 되었을까. 그런데도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서러움이 꽤 컸었나 보다. 얼마 전 동생과 얘기하는데 비슷한 말을 했다. 동생도 어렸을 때 엄마랑 우산 쓰고 집에 가는 친구들 보면서 우리 엄마는 못 온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괜히 혼자 한참을 기다리다가 집에 온 적이 있단다.
부부가 함께 만든 아이이고 육아의 책임과 권리는 부부 공동에게 있거늘 어린 시절 섭섭했던 추억은 대부분 엄마와 연결된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자꾸 그렇게 된다. 서글플 때도 있고 억울할 때도 있지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애착이 고맙기도 하다.
아들들을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많이 경험했다. 우선은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아빠와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가정도 많았고 초등학교 행사에 엄마 대신 아빠만 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부모 참관일에 아빠가 온 아이는 전교를 통틀어 나 하나뿐이라 그 일로 한동안 유명세를 겪었었는데 말이다. 아들들이 막 걸음마를 시작하던 시기에 마트 문화센터에서 엄마 대신 아빠가 아기띠를 메고 아기에게 이유식 먹여가며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정말 아름답고 흐뭇한 일이다.
남편은 요즘 아빠들 수준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좋은 아빠다. 신혼 때 가사분담이나 생활 습관 때문에 치열하게 싸웠던 것을 생각하면 우스워진다. 집안이 좀 더러우면 어떻고 생활 습관이 좀 다르면 어떤가. 지금도 종종 정리 정돈이 안 된 집안을 보며 툭탁거리긴 하지만 큰 싸움이 없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 다 안 맞아도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아들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는 일. 그 일만 잘하면 된다. 그 일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남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빠로서의 그는 A+다.
집안에서의 책임감을 공동으로 지는 것처럼 먹고사는 일에 대한 책임도 공동으로 진다는 결정은 순전히 내 마음대로 정한 것이었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남편이 버는 돈으로 기본적인 생활비를 쓰고 내가 버는 돈은 그 외의 것, 저축, 여행, 취미 생활, 재테크 등에 쓴다는 것이었다.
이미 외벌이로는 넉넉하게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우리 집도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먹고사는 일이야 어찌어찌하겠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나 저축은 쉽지 않다. 일이 좋고 내 성향과 맞아서 한다고는 해도 생계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어차피 한 통장을 쓰기 때문에 내 돈 남편 돈의 의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나마 먹고사는 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남편에게 지운 것은 남편의 기를 살려주면서 동시에 언젠가 남편이자 아빠가 될 아들들이 보고 배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들들은 아빠보다 엄마가 회사 가고 돈 버는 일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엄마가 일을 그만 두면 여행도 못 가고 자전거도 못 타고 만화책도 안 사주는 줄 안다.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두면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지금 아들들에게 중요한 건 집의 크기가 아니라 장난감을 살 수 있을지 여부다. 아빠가 돈을 못 벌면 밥을 굶지만 그까짓 거 밥은 맛없으니 굶어도 된다. 엄마가 돈을 못 벌면 피자와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다. 세상이 무너지는 비극이다. 고로 엄마는 꼭 회사에 가야 한다
지난 8월, 그리고 며칠 전, 운영하던 두 개의 매장을 양도했다. 남편은 아쉬웠는지 다른 매장을 또 열어볼까 고민했다. 5년간의 매장 운영 실적을 대략 계산해보니 큰돈은 못 벌었지만 그래도 남는 장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매장 운영의 대부분을 맡아야 했던 나는 당분간은 장사할 생각이 절대 없다며 단호하게 막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정말 홀가분했다.
매장을 처분하고 이틀 뒤 저녁, 남편이 갑자기 와인 한잔 하자고 해서 앉았다. 권고사직하게 될 것 같단다. 그리고 며칠간 회사와 협상한 끝에 어제 권고사직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자만 돈 벌라는 법 있어? 나도 한 1년 논 적 있으니까 자기도 놀아봐,라고 쿨하게 말했고 그 때문인지 남편도 빠르게 결정을 내렸지만 그 속마음이 결코 편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제 회사일이 좀 많았었는데 무리해서 칼퇴를 하고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누룽지 통닭집에서 외식을 하자고 했다. 분명 축하할 일이 아니건만 딱히 슬퍼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Everything will be all right. 모든 일에는 긍정과 부정의 측면이 공존한다. 오늘의 이 결정이, 오늘의 이 선택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르는데 미리 슬퍼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들들에게도 이제 아빠는 회사 안 나간다고 말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별 감흥이 없다. 이제부터 아빠랑 집에서 책도 더 많이 읽고 받아쓰기 연습도 더 많이 하게 될 거라고 말하자 그제야 반발이 시작됐다. 해고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알게 된 둘째가 물었다. 근데 아빠 왜 해고됐어요?
남편이 설명하기 어려워할 것 같아 내가 설명해 주었다. 아빠가 너무 잘생겨서 라고.
에? 잘 생겼는데 왜 해고해요?
백설공주 동화책에 보면 나쁜 왕비가 자기가 최고로 예쁘고 싶은데 백성공주가 더 예쁘니까 화가 나서 숲으로 내쫓고 괴롭히지? 아빠네 사장님도 자기가 최고로 잘생기고 멋있고 싶은데 자꾸 아빠가 1등으로 잘생기고 멋있으니까 화가 나서 아빠가 나가기를 바란대.
사장님 아주 나쁜 사람이다, 그렇죠? 하며 둘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로나 이후 수출을 단 한 건도 하지 못해 회사 재정이 최악인 상황에서 새로 나타난 투자자가 30% 인원 감축을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진행된 권고사직인데 사장을 외모 열등감 있는 못된 계모 왕비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리라" (창세기 2장 18절)
제대로 교회를 다니지 않은지 십 년이 넘어가는데 갑자기 어렸을 때 들었던 설교가 생각났다. 그때 목사님께서 이 구절을 설명하시며 여자가 남자보다 우수하다고 하셨다. "돕는다"는 행위는 무언가 더 잘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린애가 어른을 도울 수 없고 신입이 전문가를 도울 수 없다. 돕는 일은 더 많이 아는 자가 아직은 부족한 자를 이끌어 주고 가르쳐 주고 지원해주는 일이다.
나는 남편에게 "돕는 배필"일까.
들어보니 회사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지난 3개월은 월급이 제 날짜에 지급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일주일, 열흘씩 밀리곤 했다는데 전혀 몰랐던 것은 내가 걱정할까 봐 남편이 제 날짜에 개인 돈을 월급처럼 우리 집 생활비 통장에 우선 입금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비자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거냐,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 뭐지 정말.
내가 남편에게 돕는 배필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월급을 메꿔가며 혼자 고민이 많았을 그의 마음을, 오늘 아침 사직서를 제출하러 사무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을, 먹고사는 일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부담감을, 내가 단 1%라도 덜 무겁게 해 주었기를 소망한다. 부족한 아내지만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