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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엇비슷 Sep 17. 2021

외전. 어떻게 써야 나는 행복해질까

한달, 180일
그리고 210일


이런 알람들이 올 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지 늘 다짐만 하고 미뤄왔지만, 오늘은 그 다짐을 실천에 좀 옮겨보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한 달, 180일, 그리고 210일. 이다음 알람은 240일일까 1년일까 하는 궁금증은 덮어두고요.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MBTI 성격유형검사가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스타나 페이스북 피드를 보고 있으면 각 유형별 특징이라든지 성격, 궁합에 관한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MBTI 검사는 객관적 데이터가 부족하고, 통계적 정확도가 낮아서 심리학 연구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예전 혈액형 성격유형이 그랬듯 MBTI는 요새 젊은 층, MZ세대들의 놀이문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 유형은 ESFP입니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으나 그것을 꾸준히 하기보다는 쉽게 싫증을 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순간의 즐거움을 즐기며, 하고 싶은 일은 금방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끝까지 미룬다.'라는 특징이 있다고 하네요.


저 특징에 따르면, 210일간의 침묵이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글을 쓰는 것이 하기 싫은 일이라 미뤄왔던 것이다.

아니요. 글 쓰는 일이 싫어진 건 아닙니다. 그동안 몇 편 글을 쓰기는 했지만 브런치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글을 쓰다가도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아 지워버리고. 몇 줄만 쓰면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그 글 전체가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지워버리고. 그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요. 뭔가 완성되지 않은 느낌.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 그런 느낌들이 계속 글을 쓰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올린 글들은 만족스러운가?

아니요. 그것도 아닙니다. 가끔 제가 올린 글을 천천히 읽어보면 정말 창피하고, 보기 부끄럽고, 고치고 싶은 부분이 수두룩 빽빽합니다. 제가 일하는 곳 어르신들 사투리를 빌어서 쓰자면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진짜 천지삐까립니다. 그럼 그때는 왜 올렸을까? 그때는 만족했었거든요. 




제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어느 날, 왠지 모르게 나른한 저녁. 가만히 인스타를 들여다보던 중 한 게시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만의 책을 내어보자,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모든 것이 지겨워지던 차에 마침 잘되었다 싶었죠. 소재는 우체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들.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첫 조회. 첫 라이킷. 첫 팔로우. 첫 구독. 처음에는 제 글을 읽어주고 좋아해 주는 자체가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 수가 커질수록 어느 순간 거기에 집착을 하는 제가 보였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예전 싸이월드 투데이나 페이스북 좋아요, 지금의 인스타 팔로우를 늘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고 또 지금도 쓰고 있는지. 그 커져가는 숫자에 대한 욕심이 브런치라고 다르지는 않았을 텐데.


다음 메인에 제 글이 한번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통계란에 생각지도 못했던 숫자들이 찍혀있더라고요. 인하고 인해도 계속 뜨는 라이킷 알람들. '다음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감상까지는 괜찮았는데, '다음에도 이런 글을 써야만 한다!'라는 강박이 찾아오더라고요.


더 많은 조회수, 더 많은 라이킷을 받으려면 이런 글로는 안된다. 왜 안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된다. 마음속으로 어떤 기준점을 잡고,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아예 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제가 있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은 끝까지 미룬다.'

저는 글을 쓰기 싫었던 게 아니라,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싫었던 모양입니다. 글을 올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 허탈감이 싫었던 모양입니다. 감정과 마주하기 싫어서 지금까지 글을 못 올린 게 아니라 안 올렸습니다. 오늘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관심을 많이 받고 싶다는 내용이네요. 많이 부끄럽습니다.


올리기만 하면 조회수가 늘어나고 수많은 라이킷이 찍히고, 팔로우는 늘어나는 글.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어린 왕자의 글귀가 생각이 나네요.


만약 제라늄이 피어있는 창과 비둘기가 사는 지붕을 가진 장밋빛 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집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그 집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해야 정말 멋진 집이구나 라며 감탄하는 것이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 옛말은 정말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할 제 마음을 채우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해야 했을까요.


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 말도 틀린 게 하나 없네요. 제 머릿속에 있는 들. 구슬인지 지푸라기인지 잡동사니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열심히 꿰어보고 엮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글은 누군가가 읽어 줄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고 하는데요. 여기까지 읽어주시고 글을 완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완성해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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