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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미 Jan 17. 2020

개를 맡아줘

가족 여행을 떠나는 이모가 말했다. 이모 집에 갈 때마다 나의 무릎에 올라앉는 그 무거운 몸과 못생긴 얼굴이 떠올랐다. 어딘가 억울한 얼굴인데 늘 배가 고픈, 그래서 본능만 살아 있는 개를 맡아달라니.


나는 개에 익숙지 않다. 산책을 시키기 위해 개 줄을 착용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개는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이며 끙끙거렸다. 빨리 나가고 싶다는 건지 나가기 싫다는 건지 나는 개의 애타는 시그널을 읽지 못했다. 무거운 개의 몸이 이리저리 움직여서 개의 목에 옷을 걸어두고 팔을 끼지 못해 한참 애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밖으로 나온 개는 더 심난했다. 풀밭마다 냄새를 맡고 똑바로 가질 못하고 지그재그로 걸어가며 구석마다 코를 박았다.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아침에도 개밥을 챙겨주기 위해 이모 집에 들렀다.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몇 동 옆에 있는 그 집을 일부러 찾아 갔다.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새벽길을 걸어 그 집에 도착하면 밤새 혼자 있던 개는 검은 발톱으로 나의 찬 패딩을 잡고 늘어졌다. 나는 그런 개가 반가우면서도 귀찮았다. 급히 사료를 통에 넣고, 기다려! 단호하게 말했다.


개는 앉아서 기다렸다. 세상 눈치 다 보고 사는 내가 그렇게 단호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종교처럼 믿어버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 사료 앞에서 침을 흘리며 기다리는 개를 보면서 우위에 있다는 묘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먹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개는 사료를 먹어치웠다. 내가 매일 유투브를 보면서 연습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를 개는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개를 두고 나올 때는 애인과 이별할 때도 보지 못했던 세상 슬픈 표정을 보았다. 출근하는 내내 나를 괴롭히는 눈빛을 보지 않으려고 다음 날부터는 간식을 개의 공에 끼워넣고 던져주었다. 그러면 개는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공에 달려들었다.


하루 종일 개는 혼자 있었다.


퇴근길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둠 속에서 뛰어오는 개는 섬뜩하고 창백했다. 나는 개의 배변패드를 갈거나 사료를 채우면서 생각했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개는 무얼 할까 개는 제 먹이를 요리하거나 커피를 끓이지도 못한다. 운동화를 신고 산책을 다녀올 수도 없고, 티브이를 켜서 드라마를 정주행 할 수도 없다. 음악도 듣지 않고,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개는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나는 그 개와 친하지 않지만 잠시 이모 집에서 자리를 잡으면 꼭 내 쪽으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이 쓸쓸한 몸뚱이가 어쩌면 그 길고 긴, 시간에 대한 개의 대답인 것 같아 왈칵 슬퍼졌다.


개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원래 울 것 같이 생긴 개인데 유독 더 억울해 보인다. 그건 마치, 밥 줘, 밥 줘, 밥 주고 사랑해줘, 사랑해줘, 애원하는 것 같다. 그 얼굴엔 내가 있었다. 동생들에게 빼앗긴 엄마에게 보내던 표정, 다른 여자랑 미술관에 간 애인을 보던 표정, 별 거 아닌 걸로 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냐는 그 말에 말문이 막혀 눈만 동그랗게 떴을 때 분명 내 얼굴이 그랬을 거다.


그날은 가끔 집에 들르는 엄마가 청국장을 끓여놨다고 했다. 냉장고에 있으니 끓여 먹기만 하라고. 그래서 오늘은 개밥만 챙겨주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그 집 문을 열었다. 그런데 개를 만나는 순간, 종일 혼자 있던 개의 몸이 꼭 날아갈 것처럼 내게 달려드는 순간, 나는 집으로 가질 못하고 이모 집에서 컵라면을 꺼냈다.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개는 나의 발밑에 있었다. 개는 한 눈도 팔지 않고 나를 보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부스럭 거리면 어느새 내게로 다가오거나 자세를 고쳐 나를 보았다. 개는 나와 있을 때 한 번도 편안하게 눈을 감지 않았다. 꼭 나의 무릎 위로 올라와 불편하게 턱을 내려놓거나 웅크리고 있었다. 개 때문에 나의 자유는 사라졌다.


문득 나는 문을 열고 싶었다. 개를 이 아파트에서 나가게 하고, 저 가고 싶은 대로 보내주고 싶었다. 어디든 개가 가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놔주고 싶었다. 놔 주면 개는 정말 갈까.


개는 내가 간식봉지를 건드리기만 해도 침을 흘린다. 사료를 씹지도 않고 삼킨다. 개는 그저, 본능적이다. 먹는 게 가장 중요한 개다. 그런데 왜 이 개는 나의 발밑에 꼬리를 대고 쪼그리고 앉아서 서글프게 앓는 소리를 내는 걸까. 누구를 부르는 것 같은데, 그게 나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왜 개는 잘 모르는 나에게 제 머리통을 줄듯이 밀고 들어오는 걸까. 그러다가 갑자기 털뭉치 같은 공을 계속 왜 내게 물어오는 걸까.


나는 숙제처럼 맡겨진 이 생명이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문을 열었을 때 개가 죽어 있으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날 괴롭혔다. 그러면서도 나는 약속도 잡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개에게 갔다. 개와 같이 있지 않아도 내내 개를 생각했다. 지금쯤 개는 무얼 할까. 나를 기다릴까. 춥지는 않나? 사료가 너무 적은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이 개를 사랑한다. 다정함 없이.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애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지 않게 그러나 전부를 주면서 사랑한다. 날카롭게 말하면서 매 끼니 챙겨주기. 따뜻한 말 한 마디 없이 묵묵하게 모든 것을 준다. 차갑게 사랑하기. 따뜻함 없이 거리두기. 그러면서 지켜보기. 가 버리면 물어뜯기. 물어서 다시 내 옆에 가져오기. 해로워도 상대가 맛있는 먹이 주기. 단호하지도 못하고 다정하지도 못한 채 사랑하기. 질척대기.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다른 곳으로 갈까봐 으르렁대기. 그렇게 사랑도, 개처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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