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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미 Jun 30. 2020

살갗 없는 영혼들을 위하여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젊음을 되찾는 조건으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그것은 젊음, 낭만, 불타는 청춘을 향한 열망이었다. 마찬가지다. 예술인들은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힌 채 끝없이 갈증 나게 작품에 매달린다. 


프리다 칼로, 살바도르 달리, 레메디오스 바로, 까미유 끌로델, 고갱 등 수 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은 그들의 비극적 삶과 맞바꿨기에 지금껏 싱싱한 맥박을, 태동을 뿜어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광기어린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색채와 명암은 얼마나 멋진 것이냐 그것 앞에서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삶에서 동떨어져 지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한 줄기 빛이자 줄기였다. 그래서 그에겐 늘 예술귀(鬼)가 붙어있는 대신 친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편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단단한 껍질이 없는 사람. 그래서 불어오는 바람을 살갗이 벗겨진 몸으로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사람이다. 롤랑바르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을 살갗이 없는 사람이라 비유했지만 예술가는 늘 작품과 사랑에 빠져있으니 살갗 없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예술가들은 돈도 안 되는 예술에 인생을 ‘담보’로 걸고 있다. 종신계약이다. 나의 삶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예술은 조금씩 완성된다. 


고흐가 생전에 보냈던 편지는 대부분 돈을 보내달라는 내용이거나 그림에 관한 충족감과 절망의 사이를 오가는 내용이었다. “그림 한 점을 완성해서 돌아온 날이면, 이런 식으로 매일 계속하면 잘될 거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반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그래도 먹고 자고 돈을 쓰는 날이면 내 자신이 못마땅하고 미친놈이나 형편없는 망나니,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테오에게 그림을 그리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혐오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전부이고 식량이며 연인이었다. 


악마와의 은밀한 거래다. 또 다른 메피스토펠레스가 어느 날 그를 찾아가 광기와 색채를 주는 대신 그의 정신과 정상적 삶을 가져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발작과 광기 뒤에 남은 아름다운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으니 이기적이지만,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이 길을 꿋꿋하게 걷기 위해서는 고흐와 같이 광기어린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 더 발목이 두꺼워야 한다. 스스로 믿지 않는다면 예술가의 젊은 날은 빛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기다린다. 예술이라는, 문학이라는 그림자가 와서 나를 뜯어먹기를. 그것 말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우리는 한 곳에서 오랫동안 펜을 들고, 백지를 만지작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문학을 기다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학의 입 속에서 나는 가장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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