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젊음을 되찾는 조건으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그것은 젊음, 낭만, 불타는 청춘을 향한 열망이었다. 마찬가지다. 예술인들은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힌 채 끝없이 갈증 나게 작품에 매달린다.
프리다 칼로, 살바도르 달리, 레메디오스 바로, 까미유 끌로델, 고갱 등 수 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은 그들의 비극적 삶과 맞바꿨기에 지금껏 싱싱한 맥박을, 태동을 뿜어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광기어린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색채와 명암은 얼마나 멋진 것이냐 그것 앞에서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삶에서 동떨어져 지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한 줄기 빛이자 줄기였다. 그래서 그에겐 늘 예술귀(鬼)가 붙어있는 대신 친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편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단단한 껍질이 없는 사람. 그래서 불어오는 바람을 살갗이 벗겨진 몸으로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사람이다. 롤랑바르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을 살갗이 없는 사람이라 비유했지만 예술가는 늘 작품과 사랑에 빠져있으니 살갗 없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예술가들은 돈도 안 되는 예술에 인생을 ‘담보’로 걸고 있다. 종신계약이다. 나의 삶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예술은 조금씩 완성된다.
고흐가 생전에 보냈던 편지는 대부분 돈을 보내달라는 내용이거나 그림에 관한 충족감과 절망의 사이를 오가는 내용이었다. “그림 한 점을 완성해서 돌아온 날이면, 이런 식으로 매일 계속하면 잘될 거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반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그래도 먹고 자고 돈을 쓰는 날이면 내 자신이 못마땅하고 미친놈이나 형편없는 망나니,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테오에게 그림을 그리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혐오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전부이고 식량이며 연인이었다.
악마와의 은밀한 거래다. 또 다른 메피스토펠레스가 어느 날 그를 찾아가 광기와 색채를 주는 대신 그의 정신과 정상적 삶을 가져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발작과 광기 뒤에 남은 아름다운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으니 이기적이지만,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이 길을 꿋꿋하게 걷기 위해서는 고흐와 같이 광기어린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 더 발목이 두꺼워야 한다. 스스로 믿지 않는다면 예술가의 젊은 날은 빛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기다린다. 예술이라는, 문학이라는 그림자가 와서 나를 뜯어먹기를. 그것 말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우리는 한 곳에서 오랫동안 펜을 들고, 백지를 만지작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문학을 기다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학의 입 속에서 나는 가장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