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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미 Oct 25. 2018

창밖은

창밖은 안개다. 앞동의 창문마저 흐릿하게 보인다. 밖이 정말 밖인지 모르겠다. 이 안개는 저 먼 금강에서 뿜어왔을 것이다. 나는 내 창밖조차 마음대로 만들지 못한다. 


어제는 교육청에 가서 특강을 하기 전에, 낯선 도시에 가서 걸었다. 시간이 촉박해 아주 잠시 걸었다. 졸졸 흐르는 천변과 툭툭 떨어지던 두꺼운 낙엽과 그러니까 돈을 먼저 입금하지 말란 말이야 라면서 오랫동안 통화를 하던 중년 남성과 카페 안의 독특한 스피커와 오렌지 마멀레이드 잼이 인상적이었다. 특강에 들어가서, 시인 연봉이 얼만 지 아세요? 하고 물었더니, 엄청 작을 것 같아요. 천 만원? 이라고 누군가 답해줬고, 너무 많은 금액에 나조차 놀랐다. 소란이 낭독회에 가려고 했으나 서울까지 갈 시간이 안 되어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갔다. 


명화로 읽는 세계사, 이진숙 강사의 강의를 듣는데, 들을수록 세계가 열린다. 어제는 독일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을 다뤘는데 그들의 죄책감, 그리고 그들의 반성, 반성을 전복한 반성, 동독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배운 화가들이 서독의 작품을 접했을 때 받았을, 머리가 깨지는 듯한 충격.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충격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품들의 기운, 색깔만 칠해놨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었다. 독일의 아트호텔에 서수경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허수경 시인으로 잘못듣고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가슴이 뛰어 혼났다. 


창밖 안개는 더 짙어졌다. 청국장에 밥 비벼먹고, 전시 보러 가야지. 황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세종대왕의 음. 악.이라는 타이틀이다. 그다음엔 방송, 또 그다음엔 문학관 행사 사회 보고, 또 그다음엔 수영. 오늘도 바쁘다. 


어젯밤에 시 한 편을 쓰다가 연필을 놓았다. 나도 누군가의 머리를 깰 것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몇 주째 한 작품만 붙잡고 있다. 꿀벌을 죽여선 안돼.라는 구절을 넣고 싶은데. 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 또 하루,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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