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회사 사람들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회사 바로 옆이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니는 OO전자였다. 나는 시간이 나면 고등학교 친구들하고도 만났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자주 만나는 편이었는데 확실히 친구들을 만나니 재밌었다. 그래서 열심히 만나러 다닌 거 같다.
한데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A라는 친구는 학기 초에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었다. 소풍 가서 찍은 사진에도 보면 다른 친구 팔짱을 끼고 옆에 있는 그 친구를 등지고 있었다. 난 그 친구를 무시했던 거 같다. 그래도 사회 나와서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주 어울렸었다.
그 당시 친구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도 멋있지 않은 연애였다. 남의 연애를 보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그랬다. 친구는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남자친구를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협력업체 사람이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같은 회사 사람을 만나는 거보다 협력업체라도 그 남자가 더 낫다고 했다. 하지만 그 관계도 오래가지 못했을 거 같다. 그 남자친구와 친구들 그리고 A를 회사 밖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 A와 남자친구가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친구 A는 그 남자친구보다 컸었다. 물론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안 어울렸다.
친구 A한테 나는 남자친구와의 얘기를 했었더랬다. 대충 어떤 얘기냐면 내가 제모를 안 하고 가서 팔을 들었는데 그 남자친구가 실망하며 이게 뭐냐고 했다고 하니 친구가 겨울에 추워서 길렀다고 해라고 했었다. 나는 그때 당시에는 우습지도 않았다. 지나고 보니 우스운 이야기였다.
친구 A와 남자친구랑의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내가 하고 와서 불안해 보였는지 친구 A는 "남자친구는 내가 어떤 얘기를 하면 관계할 준비가 안되더라."며 얘기해 줬었다. 그때는 참 그 친구 A가 개방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친구 A는 산부인과에 꼭 간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내게 가보라는 얘기는 안 했었다. 그저 나는 남자친구랑 하기 시작하고 난 뒤부터 산부인과를 다닌다는 얘기를 하는 거 같았다. 그 남자친구는 명절에 그 친구 A한테 긴 소시지를 선물로 보냈었다. 친구도 그 일로 화가 많이 났었다.
비슷한 때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 B도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남자를 사귀게 된 거 같았다. 솔직히 사귀게 되었다기보다 그 남자가 밀어붙여 곧바로 결혼하게 되었다. 일을 하는데 지금은 신랑이 된 그 남자가 밖에서 같이 술 한잔 하자고 했었단다. 친구는 술만 먹고 오려고 했는데 같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신고할 뻔했었다고.
그 당시 A, B 말고 다른 친구들 주변에도 19금 이야기가 많았다. 아마 다 성인이 되어서 인 거 같다.
나는 몸도 마음도 정상이 아니게 되었다. 잦은 회식으로 매번 토를 했었고 해장은 불닭 시키고 남은 냉장고 속 콜라로 했었다. 심심해서인지 친구들을 밥 먹는다고 많이 만났었다. 운동은 하지도 않았다. 친구들과의 사이도 어느 순간 내 잘못으로 멀어지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 A와 싸우게 되었다. 나는 술 먹고 그 친구 앞에서 잘났다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과시했었다. 술자리에 친구 A의 여동생도 함께 있었는데 나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친구 앞에서 다리를 내놓고 미친년처럼 굴었었다.
퇴사하고 한참 지난 그 후에 인스타에서 그 친구한테 결혼여부를 묻는다고 연락을 했었는데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랑 더 이상 연락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 B도 B의 인천에서 하는 결혼식에도 참석했지만 둘째 딸내미를 낳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살림살이에 애 둘 키우느라 아니다 그 친구는 회사생활을 할 때도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 온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그렇게 공장생활을 6년 가까이했지만 나는 주변이 남은 사람이 없다. 회사사람들도 그렇고 친구들도 없는 거 같다.
부산에 남았던 친구들과도 퇴사 직후에는 만났었지만 나는 내가 힘들 때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 친구들을 좋게 보지 않았던 거 같다. 교대근무라 내가 먼저 전화해야 하는 거였지만 그래도 한 통화도 없었다는 것에 많이 서운했었다. 스키장, 워터파크, 마린시티, 예식장 곳곳을 함께 다녔지만 멀어졌다. 나는 그 친구들 전화번호를 다 지웠다. 그래놓고 그들이 손절하자 나는 무척 억울해했었다. 그 결혼한다고 얘기해 줬던 친구한테는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결혼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 손절 시기에 급하게 전화해서 미안하다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었다. 하지만 친구는 냉정했고 날 차단했다.
구미에서 일 다녔던 친구는 내가 구미에 찾아가서 만나고 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을 관두고 부산에 내려갔었다. 나는 그 친구 아버지 장례식에도 안 갔다. 그리고 퇴사하고 부산에서 만났을 때 그 친구는 다른 친구와 다단계를 했었고 나는 그곳에 찾아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 친구들과 싸우고 나왔다. 친구는 내게 실망하며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 좀 봐라." 하며 둘은 다른 길로 가버렸다. 그때 물건 하나라도 살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는 다단계는 무조건 나쁘다 했었고 친구들과 더 멀어지기만 했다. 입사초기에 아파서 그만둔 친구얘기를 하며 내게 책임을 물으려 했었다.
그 같은 회사에 입사하고 퇴사한 친구는 그만두고 갈 때 내게 자신이 가져온 요를 줬었다. 나도 퇴사하고 연락이 되어 만났을 때는 보자마자 자신이 아프게 되어 퇴사하게 된 결정적인 영향을 준 입사동기의 근황을 내게 물었다. 나는 옹졸했다. 우리는 서로 만나자마자 어떻게 지냈냐고 묻지 않았다. 물론 퇴사에 영향을 준 그 동기는 잘 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친구는 떨떠름한 내가 같이 지하철로 이동하자 내게 물었다 "니 내랑 놀기 싫제?"나도 지지 않고 그렇다고 했다. 친구는 자신이 산 초콜릿음료도 먹기 싫으면 버리라고 했다. 나는 또 이상한 생각을 하며 그 음료를 헬스장 화장실 세면대에 조금 부었다. 나는 그때 정말 정신 건강에 문제 있었던 거 같다. 헬스장 청소하시는 아줌마도 싫고 그 친구도 버리라고 했으니까 날 돕는 거라며 세면대를 초콜릿 음료로 더럽혔다. 현재는 헬스장에 안 다닌다.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인 거 같다.
나도 그들에게 친구다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들도 친구는 아니었던 거 같다. 힘든 교대근무로 점점 멀어졌고 일이 익숙해졌을 때는 친구들을 까맣게 잊었다. 그들도 나랑 더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지금은 조금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연락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