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개점휴업 상태이던 단지 내 사우나가 오픈한 것이 10월 말. 난 아직도 수영장, 찜질방, 대중목욕탕, 사우나 기타 등등 공식적(?)으로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 아파트 단지 내 사우나 역시 가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온수를 절약하기 위해 퇴근 후 회사에서 씻고 오던 사람이었으므로 무료인 단지 내 사우나에 아들을 데리고 꼬박꼬박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나에게도 너~무 좋다고 가정경제에 이바지하기를 강요했으나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타깃을 바꿨다. 중학생이 되면서 씻으러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는 아녜스에게 사우나 1회 이용 시 용돈 3천 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걸었고, 그런 아녜스의 보호자로 꼼짝없이 사우나 이용이 시작되었다.
내 기억으로 결혼 이후 대중탕에서 세신을 해본 것은 명절 연휴 시댁어른들과 온천여행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아녜스가 미취학 어린이였고 그곳은 아마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물놀이를 했던 즐거운 곳, 수영복을 입지 않는 수영장쯤으로 아녜스 기억에 저장되어 있을 터였다. 워터파크나 수영장, 찜질방등을 종종 가긴 했지만 게으른 엄마는 세신은 생략하고 샤워만 시켜 나오기에도 바빴다. 교육적 차원에서라도 세신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신 후 개운한 그 맛도 알긴 알아야지.
사우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부셔 고개를 들 수 없다.
영롱한 분홍소시지 빛깔의 할머니들이 목욕 후 물에 젖은 파마머리를 흩날리며 탕에서 나오시는 중이다. 재빨리 시선을 거두어 쭈볏쭈볏 신발을 챙겨 들고 빈 옷장을 찾았다. 이제부터는 adhd 그녀의 교육시간이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제법 숙녀티가 나는 그녀는 아직도 집에서 샤워 후 위풍당당하게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거실을 활보해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차근차근 샤워 후 매너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대중탕 예절도 A부터 Z까지 알려줘야 한다. 대부분의 행동이 슬로 모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부터가 나의 첫 임무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신속하게 훌러덩훌러덩 벗어던지는 모범을 보이고 아녜스를 기다린다. 나만큼 익숙지 않을 테니 재촉하지 않는다. 유리문을 밀고 탕 안으로 들어가니 훅 끼쳐오는 습한 공기와 요란한 물소리가 어릴 적 엄마와 함께 갔던 동네 목욕탕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어릴 적 살던 2층 양옥집은 온수가 나오지 않아 삼 남매 목욕을 시키려면 연탄아궁이의 큰 솥에 물을 끓여야 했다. 때문에 겨울이 되면 일요일 오후 삼 남매를 이끌고 30분을 걸어 대중목욕탕을 가는 일은 엄마에게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수증기 자욱한 그곳에,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그곳에 혈기왕성(?)한 꼬맹이 셋을 풀어놓는 순간 각기 다른 세 방향으로 흩어지는 꼬맹이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3남매를 윽박질러 잡아 앉히고 엄마의 신성한 의식이 시작된다. 목욕탕 전용 세숫대야와 바가지로 첫째인 나부터 재빨리 씻겨낸다. 둘째, 셋째를 씻겨서 뜨거운 탕에 몰아넣고 엄마도 한숨을 돌린다. 삼 남매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물장구를 치는 동안 엄마는 조용히 초록색 이태리 타월을 장전한다. 가녀린 엄마의 팔은 일주일치 묵은 때를 다 벗겨버리겠다는 집념으로 3남매의 피부를 한 꺼풀씩 벗겨냈고 탕에서 나가기 전 깨끗한 물 한 바가지를 발에 끼얹어 마지막 더러움까지 씻어내면서 끝이 났다. 그것은 마치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세족례만큼 신성한 것이었다. 목욕 후 시원한 요구르트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주고 그제야 당신 한 몸 씻어내는 그 신성한 의식은 막내 남동생이 여탕 출입을 더 이상 하지 못할 때까지 이어졌다.
할머니들 사이를 비집고 한자리 차지해서 우리 엄마처럼 해본다. 아녜스를 초벌로 씻겨내어 탕으로 들여보낸다. 뜨거움에 몸서리치는 그녀를 잘 어르고 달래어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몸을 담그다 보면 한 꺼풀 벗겨내기 딱 좋을 정도가 되어 있다. 난 분명 다이소에서 샀는데 왜 이태리 타월인지 아직도 의문인 그것. 혹시나 해서 손님용으로 구비해둔 그 이태리 타올로 이제는 나보다 키가 큰 딸아이의 등을 기술적으로 밀어준다.
아마도 네가 기억하는 한 처음일 테지. 자기 몸에서 그런 국수가락이 뽑아져 나오는 것에서 작은 눈이 똥그래지면서 1차 동공지진이 일어난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터졌지만 시끄러운 물소리에 묻혀버렸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받아 든 이태리 타올로 팔다리 여기저기를 밀어 보더니 밀어도 밀어도 계속 나오는 지우개 가루에 2차 동공지진.
“헐. 엄마, 계속 나와”
2차 웃음이 터졌으나 그 소리도 이내 묻혔다. 7년 만에 그렇게 우리는 세신을 끝내고 우리 엄마, 아녜스의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한 바가지 물로 마지막 더러움까지 씻어냈다. 묵은 때를 벗겨내고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진 그 기분을 아녜스는 아마 처음 느껴봤을 것이다. 그 경험이 나쁘지 않았는지 이제는 내가 바쁘면 용돈 적립을 위해 자기 혼자 사우나에 가기도 한다.
아주 어렸을 때는 숟가락 잡는 방법부터 유치원에서 쉬가 마려울 때는 손을 들고 화장실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차들이 오가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꼭 초록불일 때 차가 오는지 잘 살피고 건너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일러 줬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정도는 다 알지 않을까 하고 띄엄띄엄 넘어가는 것들이 많아졌다. 사실 중학생이 된 지금은 어렸을 때처럼 내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스마트폰 사용은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찌 그리 잘하는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말대답을 논리적인 것처럼 포장해 내 속을 뒤집는 것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 나의 둥지를 무사히 떠날 수 있도록 이날 사우나에서의 세신처럼 낯선 경험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도울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싫어하는 사우나를 같이 가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왼쪽 엉덩이가 가려운걸 보니 때가 덜 밀렸나 보다. 오늘 한번 더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