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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와 모네의 세관시리즈

클로드 모네의 '세관 오두막 연작'

by 김큐

모네는 노르망디 해안의 절벽에 서서,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절벽 끝 외롭게 자리 잡은 작은 오두막에 고정된다.

"세관들이 쓰던 건물이었다지?..." 모네가 중얼거린다.

"전쟁 통에도 용케 살아남았네. 참 평화롭네"


그의 동료가 묻는다

"모네, 저걸 그리려고? 저 낡은 건물을? "


모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리고 입을 연다.

"이 작은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봐봐.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건물과 자연이 제법 조화를 이룬 모습이 난 마음에 드는걸?

아름답고 이 평화로워 보여, 이걸 한번 그려보고 싶네,

어떤 사람들에겐 단순히 아름다운 광경을 그린 그림으로 보일 테고

어떤 이들에겐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따뜻한 그림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


때마침 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와 바다를 비췄다.

모네의 눈이 반짝였고 햇살을 머금고 밀려드는 파도도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는 바삐 캔커스를 꺼내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린다.

"이번엔 몇 장을 그려야 끝을 낼 수 있을까......"


클로드 모네는 푸르빌과 바렌주빌 지역의 세관 오두막을 주제로 3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관세'

관세의 칼을 여기저기 휘두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다. 관세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게 관세와 어울리는 수식어를 고르라는 시험 문제였다면 아름다운을 고른 사람들은 오답처리가 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고 무역적자 해소가 당면 과제인 트럼프 대통령에겐 관세처럼 사랑스러운 수단도 없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선 아름다운 이라는 수식어가 유일한 정답인 상황이다. 전 세계가 트럼프발 관세 정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떻게든 무역 장벽을 낮춰 생산을 효율화하고 저렴하면서도 좋은 상품을 팔고 소비하며 경제성장을 이루던 20세기 자유무역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1986년 우루과이 라운드부터 2007년 한미 FTA가 체결될 때까지, 관세 장벽을 허물라며 갖은 압박을 가하던 미국과 관세 장벽이 허물어지는 걸 막으려 거리로 몰려나왔던 사람들은 완전히 반대 입장에 서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 함께 역사는 쇄국정책도 보호무역주의도 실패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꾸역꾸역 세상은 뒤 걸음질을 치고 있다. 되돌리려는 자와 버티는 자 모두 걱정이 태산이다.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한국을 포함)들은 관세장벽이 올라가면 수출이 줄어 경제가 더 어려워질까 우려한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관세로 인한 물건값 상승이 인플레를 자극하고 소비를 줄여 경기가 식어 버릴 거라는 경고가 나온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기 행정부 때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자신의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는 무엇을 믿고 어떤 확신이 있는 것일까?


절벽 위 외로운 건물과 자연에 매료되다.

아이러니하게도 관세를 아름답다고 표현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인상주의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를 떠올렸다. 모네는 연작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동일한 주제(대상)를 다양한 조건에서 여러 번 그리며 빛과 상황이 만들어 내는 다름을 작품에 표현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수련 연작이다. 모네의 생가에 있는 수련 정원을 30여 년 간 무려 250점이 넘게 그렸다. 그 외에도 루앙 대성당, 건초더미 연작 등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1882년(좌)과 1897년(우) 클로드 모네 '세관 오두막, 바렌주빌'

버려진 세관 오두막을 그린 연작은 대중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바렌주빌 절벽의 허름한 오두막을 그린 작품으로, 오래된 세관 건물과 주변의 자연풍광이 아름답게 묘사돼 있다. 절벽과 그 뒤로 펼쳐진 푸른 바다만으로도 요즘으로 치면 인스타 맛집이 될 상황인데, 여기에 외로운 오두막이 정점을 찍어주니 모네의 발길이 멈출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더구나 시간과 날씨에 따라 햇살마저 모습을 달리하니 그때그때 포착되는 또 다른 모습을 모네는 30여 작품으로 남겼다.


시기적으론 두 번에 걸쳐서 관련 그림들을 그렸는데, 그는 1882년 세관 오두막 연작을 그린 후 15년이 흐른 1897년 이곳을 다시 찾아 또 다른 느낌의 그림들을 남겼다. 1882년 작품들이 자연의 풍광을 잘 포착해 그렸다면 1897년의 작품은 비슷한 구도지만 빛의 효과가 더 강조되며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더 드러내는 듯하다. 모네는 실제 후기로 갈수록 빛에 의해 달리 보이는 사물 다시 말해 빛의 효과를 더욱 살린 그림을 그렸다.


나폴레옹의 영국 봉쇄와 세관 오두막

노르망디 해안 절벽엔 왜 이런 세관 건물이 덩그러니 세워졌을까? 나폴레옹 시대의 유물이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에 크게 패한 나폴레옹은 해군력에 큰 타격을 입는다. 결국 군사력으로 영국을 정복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경제 봉쇄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 않던가? 미국이 이란을 북한을 그리고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하는 전략은 반세기 전 나폴레옹이 이미 써먹은 전략이다. 이른바 나폴레옹의 대륙봉쇄 정책인데, 1806년엔 베를린 칙령을 발표해 영국과의 모든 무역을 금지시켰고 이듬해인 1807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중립국 선박도 영국과의 거래를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봉쇄령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더 빠르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이야 끔찍이도 싫은 영국을 굴복시키고 싶어 했겠지만 영국과 물건을 사고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은 봉쇄령이 반가웠겠는가? 밀무역이 횡행했고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을 마주한 프랑스의 해안가엔 모네가 그린 세관 오두막들이 곳곳에 들어서게 된다. 프랑스와 동맹국들의 경제는 영국과 교역이 끊기며 어려움에 빠졌다. 반면 영국은 프랑스 등을 통한 교역이 막히자 대서양을 통해 북미와 남미와의 교역을 확대해 돌파구를 찾았다. 대륙봉쇄령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또 하나의 원인이 됐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가 민심을 얻은 역사는 없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스무트 홀리 관세법

미국이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크게 높인 사례는 이전에도 있다. 1930년 미국은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자 자국산업 보호라는 명분하에 관세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근거법을 마련한다. 리드 스무트 의원과 월리스 홀리 의원이 발의했다고 해서 스무트-홀리 법(Smoot-Hawley Tariff Act) 관세법이라 부른다. 이 법의 핵심은 고율의 관세부과이다. 평균 55%에서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후버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은 2만여 개의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NYT "경제학자들이 후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

결과는 어땠을까? 미국의 이런 조치에 캐나다, 멕시코, 쿠바, 스페인 등 상대국들은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수입도 평균 28%~33%까지 줄였다. 글로벌 무역은 크게 감소했고 미국의 경제 불황은 더 심화됐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시 관세를 낮추고 자유무역 정책을 꺼낸 든다.


정답은 없다. 끊임없이 그릴뿐.

15세기 미술계를 지배하던 르네상스 패러다임은 19세기 들어 완전히 깨졌다. 획일적 사고가 아니라 다원적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존중된 세상. 화가들은 이런 세상을 맞이하자 자신만의 관점과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빛과 색채의 변화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인상주의 화풍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 모네는 어쩌면 생존을 위해 연작이라는 방식을 취했을지도 모르겠다. 19세기는 회화 종말론을 일으켰던 사진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화학자들은 사진을 한 장 찍기 위해 해 8시간이나 걸리던 노출시간을 단 몇 초로 줄이는 미술사 최대의 위협적 업적을 만들어냈다. 이젠 똑 같이 그릴 필요도 없고 똑 같이 그리면 살아가기도 힘들어진 세상. 그래서 그는 그때그때 달리보이는 똑같은 사물을 그리고 또 그린 것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했다. 위험이 닥치면 남보다 내가 먼저 살고자 하는 원초적 본능이 살아난다. 사람과 물건의 이동이 막히니 정작 중요한 것들이 나라 밖, 꽤 먼 곳에서 오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이라는 걱정이 자국 우선주의를 자극하고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라는 큰 장벽 안에 자신들을 돕고 지지할 나라와 기업들을 밀어 넣고 우리끼리 잘 살자고 외친다. 그러기 위해선 반 강제적 방법도 동원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수단이 관세인 상황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과거엔 정답인 게 지금은 오답이고 예전엔 오답인 게 지금은 정답인 상황이 비일 비재하다. 사실 그래서 경제 문제에 있어 정답은 없다. 당시의 상황과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해보고 수정하고 다수가 만족하는 방식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모네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은 19세기 같은 대상을 수 없이 그림을 그리며 정답을 찾으려 했듯, 코로나 이후 엔데믹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역사는 항상 과도한 건 되돌려 놨다는 거다. 또 과도함이 클수록 그 되돌림도 컸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참고자료> 관련 그림 링크


https://www.artic.edu/artworks/16542/the-customs-house-at-varengeville


https://philamuseum.org/collection/object/102923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paintings_by_Claude_Monet#/media/File:5292315491_1f00bfce3f_o_w145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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