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쟁 배상금 이야기
이 글은 이전 발행글(비너스 피부의 비밀 '계란')과 연관된 내용입니다.
앞의 글을 먼저 읽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패전 배상금 1,320억 금마르크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패전국인 독일은 연합국과 파리 교외의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베르사유조약을 맺는다. 베르사유 조약은 강화조약(講和條約)으로, 전쟁종료와 함께 평화회복, 영토, 배상금 등의 조건을 규정하는 조약이다. 이 조약에서 결정된 독일의 전쟁 배상금은 1,320억 금마르크였다. 당시 환율을 적용해 미국 달러로 계산하면 27.5억 달러 규모이다. 지금과 그때의 화폐 가치를 동등하게 놓고 평가할 수 없으니 연간 인플레이션률을 3%로 가정해 계산하면 약 631억 달러가 나온다. 우리 돈으로 92조 원이 넘는 규모이다. 또 다른 계산법도 있다. 당시 독일의 금마르크는 0.358g의 금으로 교환가치가 있었다. 이때는 금본위제를 택하고 있던 상황이다. 그러니 1,320억 금마르크를 금의 무게로 환산하면 4만 7.256톤이다. 이걸 다시 지금의 금 시세(온스 당 2,000 달러)로 계산하면 약 3조 달러, 우리 돈 4.378조 원이 넘는다.
종이 마르크의 등장과 하이퍼인플레이션
독일은 이런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결국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종이 마르크를 발행한다. 1918년 1 금마르크가 2종이 마르크게 해당됐지만 대량의 종이 마르크 발행은 결국 화폐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불과 1년 뒤인 1919년 말에는 1 금마르크가 10종이 마르크로 거래된다. 1년 사이 물건 값이 10배 올랐다는 의미니 독일 경제는 사실상 붕괴됐고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혼란은 심화됐다. 결국 1924년 미국 주도로 이른바 도스 플랜이 실행되는데, 독일의 배상금을 줄이고 외국에서 대출을 받아 배상금을 갚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주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독일의 경제가 조금 살아나는 듯했지만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며 다시 침체에 들어간다.
영 플랜과 영 본드
대공황이 일어났던 1929년 미국 주도의 이른바 영플랜이 실행되는데, 독일의 배상금을 장기 상환 방식으로 바꾸는 게 골자였다. 독일의 배상 협의를 도왔던 미국 사업가 오웬 영의 이름을 따서 당시 독일이 발행한 채권을 영 채권(앙드레 코스톨라니가 투자해 1,400%의 수익을 올린 바로 그 채권)이라고 부른다. 만기 35년에 연 5.5% 이자 지급 조건으로 발행해 3억 금마르크의 자금을 조달했다. 앞서 계산 한 방식을 사용해보면, 1 금마르크가 약 0.358g이니 107.4톤 정도의 자금을 유치한 셈이다. 물론 일부는 독일 재건 비용에 사용됐지만 3 분의 2 이상은 전쟁 배상금으로 영국과 프랑스에 지급됐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전쟁 배상금 부담은 경제를 짖눌렀다. 더구나 대공황까지 본격화되며 최악의 상황으로 빠진다. 히틀러는 이런 환경에서 등장했고 1934년 모든 외채에 대한 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다. 그리고 1941년 6월 결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2010년 10월 3일
독일은 1차 세계대전 배상금과 관련된 채무를 2010년 10월 3일 완전히 상환한다. 히틀러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이후 1953년 런던 채무협정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국제사회 복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독일은 이 협정을 통해 과거 채무를 재구조화하고 일부를 상환하기로 합의했다.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됐던 독일이 통일 된 이후 본격적인 채무상환이 이뤄졌고 불과 15년 전에 이 채무를 모두 상환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폐단위
이전 글에서 소개한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그려졌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사용한 화폐는 플로린, 솔디, 데나리 등이다. 1플로린은 20솔디, 1솔디는 12데나리 이다. 그러니 상인이 신선한 달걀 10개를 2 솔디에 팔겠다는데, 산드로 보티첼리가 1솔디 6데나리 하자고 한 건 25%를 깎아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럼 당시 시세로 신선한 달걀 10개가 2솔디면 비싼 걸까 싼 걸까?
르네상스 시대 달걀 가격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명확히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달걀 하나에 1~2 데나리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르네상스 시대 1 플로린을 지금 화폐가치로 약 150달러 정도로 보는데, 1 플로린이 240데나리 이니 1데나리의 값어치는 0.625달러 수준이다. 우리 돈으로 900원쯤(환율 1450원 계산)인데, 지금처럼 대규모 사육시스템이 없음을 고려하면 제법 저렴한 가격에 달걀이 유통 된 셈이다. 그럼 이 처럼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달걀이 공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의외로 방목에 있다. 농가 주변에 풀어놓은 닭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벌레나 곡물찌꺼기 등을 먹고 자랐고 특별한 투자와 노동력의 투입 없이도 사육이 가능했으니 생산 비용 자체가 낮았던 것이다. 지금 방목환경에서 생산된 친환경 달걀이 대규모 사육 환경의 달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