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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해 버린 유전과 오일 러시

제임스 해밀턴의 '한밤에 불타는 유정'

by 김큐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온 일꾼이 소리친다.

"석유가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드디어 터졌어요. 유정이 터졌습니다. 빨리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헨리 라우즈는 자신의 유정에서 대량의 석유가 터져 나온다는 소릴 듣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유정으로 달려갔다.

정말 석유가 유정에서 마구 솟구치고 있었다.

장관이다. 석유가 하늘로 치솟아 폭포수가 쏟아지듯 땅으로 흘러넘친다.

이런 광경도 처음 보지만 석유가 이렇게 치솟듯 뿜어져 나온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감격과 함께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워낙 거세게 석유가 뿜어져 나오니 손을 쓸 수가 없다.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석유를 막을 수도 없고 쏟아져 내리는 석유를 받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어쩌란 말인가? 오크통이라도 주변에 가져다 놔야 하나?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잦아들 때까지 조금 기다려 볼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도는 사이 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석유에 주변은 온통 시커멓고 유정 주변은 석유와 함께 뿜어져 나온 가스에 휩싸였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누군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입에 문다.

'저건 시가잖아...'

말릴 틈도 없이 그 사람은 시가에 불을 붙인다.

순간 화르륵~ 엄청난 열기와 불길이 달려든다.


'도망쳐야 해...'

몸을 돌려 뛰어보지만 등이 너무 뜨겁다. 정신이 아득하다.


1861년 19명의 생명을 앗아간 불기둥

언뜻 보면 불꽃놀이의 한 장면 같지만 186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일어난 유정 폭발 사고를 그린 그림이다.

제임스 해밀턴 '한밤에 불타는 유정'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기둥과 유정 주변을 뒤덮은 화마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칠흑 같은 어두움과 짙노랗고 붉은 화염이 극한 대조를 이뤄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러즈빌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이 사고는 유정의 소유주였던 헨리 R. 라우즈를 포함해 19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석유가 분출하는 장면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 중 수십 명도 중상을 입었다. 당시 언론은 불기둥이 90m까지 치솟았고 3일 밤낮을 태우고 나서야 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재난 상황을 그린 그림이지만 제임스 해밀턴의 이 그림에는 석유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만들어낸 파멸이 녹아들어 있다. 또 엄청난 크기의 불기둥에 비해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매우 작아 재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기력함까지 보여주는 듯하다. 휘영청 떠 있는 달은 아름답지만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은 파괴된 자연의 무서움을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분쟁에 요동친 유가

이스라엘과 이란 분쟁이 격화되면서 국제유가가 요동을 쳤다. 6월 초 배럴당 60달러 초반에 형성돼 있던 국제유가(WTI기준)는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시작으로 이란의 보복 공격 여기에 미국이 개입해 이란의 핵시설 3곳을 폭격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며 단시간 내에 70달러를 훌쩍 넘어 버렸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을 할 것이라는 소식에 유가는 다시 60달러 대로 내려왔다.

이스라엘-이란 분쟁에 치솟은 유가 출처: 네이버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국제 유가가 제일 먼저 반응한다. 전 세계 원유시장에서 중동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산유국에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등 중동의 주요 5개국이 포함돼 있으며 전 세계 산유량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6%가량이다.


다만 최근 원유시장에서 중동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 등에 대처하기 위해 석유를 포함한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분위기인 데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이른바 비 OPEC 국가들의 원유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이후 불어닥친 셰일혁명은 미국을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에 올려놨다. 2023년 한때 미국은 하루 1,32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량을 넘어서기도 했다.


석유가 쏟아져 나와도 문제

1860년대 오일 러시가 있었던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로 다시 가보자. 제임스 해밀턴이 그림으로 남긴 유정의 큰 폭발사고는 불씨를 잘 못 관리한 탓이라가 보다 부족했던 유전 시추 경험과 기술 때문이다. 지하의 석유가 천연가스 압력에 의해 땅 위로 분출하는 유정을 분유정(oil gusher)이라고 하는데, 염정 시추기술을 응용해 석유를 캐내던 초기, 압력제어 기술 등이 부족해 종종 이런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유정의 발견과 큰 폭발은 석유의 대량 공급 가능성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폭발과 함께 3일 밤낮을 태운 펜실베이니아 러즈빌의 유정에선 당시로선 엄청난 양인 하루 3000 배럴의 원유가 생산됐다고 한다.


이런 상징적인 사건들은 사람들을 오일 러시에 대거 동참하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유정이 발견되고 시추 기술도 발전하자 석유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 1860년 45만 배럴에 그쳤던 펜실베이니아의 원유 생산량은 불과 3년 뒤인 1962년 300만 배럴로 치솟았다. 이렇게 석유가 많이 생산됐으니 오일 러시에 참여한 사람들은 부자가 됐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에너지 원으로써 석유가 시장에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빠르게 공급이 늘자 석유 가격은 폭락해 버린다. 1861년 초 배럴 당 1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석유가격은 6월엔 배럴 당 50센트에 거래되더니 그해 말에는 10센트까지 떨어져 버린다. 대박의 꿈을 꾸며 원유 시장에 뛰어들었던 많은 생산자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하지만 반전은 여기부터다. 석유 가격이 폭락하자 사람들이 석유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석유는 램프용 연료시장에서 빠르게 석탄유 등 다른 램프용 연료를 대체하며 시장을 장악해 버렸다. 수요는 곧 공급을 따라잡았고 1년 뒤 석유 가격은 배럴당 4달러가 되더니 1963년엔 7달러를 넘었고 이때부터 석유 개발로 큰돈을 거머쥐는 벼락부자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해밀턴은 미국의 '터너'

제임스 해밀턴은 영국의 유명 화가 '윌리넘 터너'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윌리엄 터너 '영국 의사당의 화재'

윌리엄 터너의 드라마틱한 색채 사용과 재난과 재해 등 극적인 자연현상을 그림의 소재로 활용한 점이 유사하기 때문이다.(윌리엄 터너의 작품은 앞선 글에서도 한번 다룬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kimq/94) 제임스 해밀턴의 '한 밤에 불타는 유정'처럼 윌리엄 터너도 큰 화재를 소재로 그린 작품을 남겼는데, 1834년 런던 템즈강변에 위치한 영국 의사당의 대화재를 그린 작품이다. 화풍이 비슷한 두 화가가의 대형 화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림 출처>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burning-oil-well-at-night-near-rouseville-pennsylvania/jwFxNJiDFJ0UwQ?hl=ko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he-burning-of-the-houses-of-lords-and-commons-16-october-1834-0085/zwGD18zf0s-nTQ?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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