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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 Apr 30. 2024

인간과 자연의 폭력... 그리고 노동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

조세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노예선'

앞선 글, 향유고래 이야기(https://brunch.co.kr/@kimq/91)를 하기 위해 고래 관련 그림을 찾다 접한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 중엔 눈길을 끄는 작품이 꽤 다. 그중 하나가 바로 '노예선'이다. '포경선'이라는 작품이 그랬듯 이 그림 역시 언뜻 바라보는 것과 작품의 제목을 보고 꼼꼼히 살필 때의 느낌엔 큰 차이가 있다. 또 이 작품의 탄생 배경까지 알고 나면 그 느낌의 깊이가 확 달라진다.


해 질 녘 붉은 노을과 거친 파도가 하나가 된 것 같은 바다에 범선이 보인다. 이 범선은 거친 친파도를 헤쳐나가기 힘겨워 보인다. 거친 파도에 좌초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작품명 '노예선'을 확인하고 나면 이제야 범선 앞 거친 바다에 뭔가가 눈에 들어온다.

쇠고랑이 채워진 노예의 발

허우적거리는 손 같은 것들이 보이고, 머리와 몸은 바닷속에 가라앉고 물 밖으로 나온 쇠고랑 채워진 사람의 다리도 확인된다.

'바다에 던져진 노예의 모습을 그렸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붉은 노을의 강렬함은 뜨거운 지옥불로 느껴지고, 여기저기 거친 파도 위로 절규하듯 뻗어 올린 손은 마치 나를 쥐어뜯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 그림이 소장된 미국 보스턴 미술관(MFA)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 작품에 '인간과 자연의 폭력에 대한 작가의 매혹을 보여준다'라는 평이 달렸다. 1840년 영국 왕립 미술원에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때, 작가 터너는 '희망의 오류'라는 시 구절 일부를 이 그림과 함께 전시했다고 한다.



"모든 선원들은 돛대를 치고 돛을 묶어라

저 분노하는 일몰과 날카로운 구름은 태풍이 온다는 걸 알려준다.

태풍이 갑판을 휩쓸기 전에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바다에 던져라

그들의 사슬은 결코 신경 쓰지 마라

희망, 희망, 헛된 희망!


작가 터너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병들고 죽어가는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영국 선박 'Zong'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진다. 당시 보험사들은 실종된 노예에게만 보험금을 지급했다. 다치거나 이미 생명을 잃은 노예는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돈이 안 됐다는 얘기다.


삼각무역은 끝없는 이윤추구의 끝판왕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노예는 대량생산을 위한 저가의 노동력을 공급해 주는 원천이었다. 면화, 설탕, 차 등 유럽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은 비싸게 팔렸다.(공급은 적고 수요는 많았으니), 얼마나 많이 확보해 유럽으로 이들 물건을 들여오느냐가 당시 유럽 사람들의 부를 결정했다. 돈이 되는 걸 놓칠 리 없는 자본가들은 국가의 식민지 개척에 적극 동조했고, 아예 식민지에 대규모 농장을 조성해 이들 작물의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한다. 또 동인도회사를 세워 국가의 비호아래 이들 무역을 독점했다.


설탕의 재료인 사탕수수, 면화의 원재료인 목화 재배를 위해 조성된 이런 대규모 농장을 플랜테이션이라고 불렀고, 플랜테이션은 당시에도 꽤 큰 투자를 동반하는 사업이었다. 주로 유럽 특히 영국의 자본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 사업의 성공 여부는 자본의 투입규모보다 저가의 대규모 노동력 확보가 갈라놨다. 바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사업이다.


자본의 흐름은 잔인하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가축과 다름없어 사고팔고 사실상 무임금으로 부렸지만 노예무역에는 돈이 몰려들었다. 더구나 플랜테이션의 거대자금을 투자한 자본가들에게 노예무역은 인건비를 줄여 투자수익을 높이고 이를 통해 투자금 회수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했다. 영국 리버풀을 출발한 노예무역선의 항로를 따라가 보자. 이들은 노예와 교환할 총과 유리구슬, 면직물 등을 싣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이 물건들은 당시 아프리카 왕국들이 선호하는 것들이다. 아프리카에 도착해 이들 물건과 노예를 교환하고 이 배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조성된 카리브해 지역으로 향한다. 사탕수수 농장, 면화 농장 등에 노예를 팔고 그 돈으로 면화나 설탕 등을 사들여 리버풀로 돌아온다. 이런 형태의 무역이 바로 삼각무역이다.


지금이야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을 놓고 각국이 패권경쟁을 벌이지만 당시 세계의 패권을 가르는 상품은 면화, 설탕 같은 것들이었다. 국가 간 패권 싸움은 결국 자본 축적의 싸움인데, 이들 상품을 틀어 쥐는 나라들이 국가적인 부를 쌓아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각무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나라가 영국이었고, 그들은 그 부를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가장 먼저 근대화 국가가 된다. 세상은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노예무역은 지속됐고 약 1,5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가축=노예=자동화=로봇

안타깝게도 몰인간성의 끝을 보여줬던 노예제도는 같은 인간임에도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니 어쩌면 높은 수익에 눈이 멀어 흑인들을 애써 가축이라고 우긴 인류의 추악한 역사다.  산업혁명과 이를 통한 산업현장의 기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노예제도는 더 오래 유지됐을지도 모른다. 노예들의 노동력을 대체할 뭔가가 나타났으니 그들의 인권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비용 증가를 우려해 노예제도를 끝까지 고수하려 했을 것이다. 노예제도는 사라졌고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인권이 과거보다 존중받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돈 때문에 노동자의 인권이 무시되는 일은 빈번하다.  

설탕공장에서 일하는 노예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저가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공장 자동화를 넘어 인간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조현장에 투입될 거라고 한다. 24시간 일하고 불만도 없는 전기만 있으면 되는 노동자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투입은 초기 투입비용은 크겠지만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는 공장은 경영자들의 꿈이다. 테슬라를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로봇을 통한 완전 자동화를 꿈꾼다. 돈을 향한 인간의 탐욕은 이처럼 적당히가 없다. 근대화 과정 속에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었던 노동운동은 이런 인간의 탐욕에 맞선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류의 자존심 건 저항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노동의 종말'을 통해 기술발전에 따른 자동화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인간들의 문제를 짚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 결국 실업문제는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을 키우고 이는 경제위기로 연결된다고 그는 경고한다. 실제 공장 자동화와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 등은 부의 쏠림을 더 강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노예를 통한 이득이 자본가의 주머니로 모여든 것처럼, 로봇을 활용한 공장은 자본투입 대비 이익률을 높여 회사의 대주주들이 가져가는 이익을 더 키울 것이다. 물론 이익률이 높아진 만큼 회사 주식가치도 올라 회사에 투자를 한 자본가들의 부도 커질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자본가들은 더 부자가 되고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힘겨워진다.

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기사

 

노예제도를 적극 활용하던 플랜테이션의 시대와 인간의 노동력을 로봇으로 대치하려는 지금의 시대는 효율과 생산성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돈을 주지 않고 일을 시켜 문제였지만 이제는 일자리 자체를 주지 않아 문제라는 게 다르다고 할까.


정부도 고민..."로봇에게도 세금을"

비단 노동자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노동의 소멸은 정부에게도 재앙 같은 일이다. 정부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득세가 크게 줄어든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사실  장기적으로 기업들에게도 좋을 건 없다. 소비는 결국 일정 소득이 유지돼야 일어나는데, 노동자의 소멸은 곧 소비의 실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는 지난 2017년 로봇세를 도입을 주장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는 "기술을 통해 노동이 사라진다고 해서 돈을 벌지 못하게 됐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소득세 수준의 세금을 로봇 사용자에게 부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로봇 도입을 늘려 이익률이 올라간 사업주에게 로봇세 명목으로 세금을 더 걷자는 얘기다. 내가 돈을 투자해 로봇을 도입하고 이익을 더 냈는데, 그 이유로 세금을 이상한 세금을 더 내라는 주장이 황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제 노동의 종말이 현실화된다면 이보다 더 황당한(?) 것들도 고민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림 출처 https://collections.mfa.org/objects/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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