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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 Apr 09. 2024

빛을 향한 인류의 잔혹함... 향유고래 이야기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포경선'

고래를 그린 화가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영국의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ner, 1845)의 말년 작품, 포경선이 있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포경선' (출처:메트로폴리탄미술관)

중앙의 범선은 눈에 들어오지만 작품명을 확인하기 전까지 작가가 그려 넣은 고래를 한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어둡고 묵직한 형태의 뭔가가 눈에 들어오지만 바위나 거친 파도를 표현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는 바다를 주재로 한 많은 작품을 그렸다.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작품에는 추상적 표현이 강화됐는데, 그의 나이 75살에 그린 '포경선'도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 범선과 고래 그리고 하늘과 바다가 명확한 구분 없이 뒤엉켜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포경선이란 제목과 함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래의 묵직함과 거친 바다의 힘은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 제이콥 마탐(Jacob Matham)은 터너 보다 200년 전쯤인 1598년 해변에 밀려온 거대한 고래 그림(판화)을 남겼다. 금속판을 긁어 세밀하게 그려 넣은 이 그림에는 뭍에 올라온 고래와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생동감 있게 표현돼 있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은 귀족이거나 관리인으로 보이는데, 마주 보고 손짓하는 사람들과 뭔가를 거래하는 듯하다.  또 고래 위에 올라가 도끼질을 하는 사람도 찾아 볼 수 있고,  통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여기에 구경꾼까지 다양하다.  

제이콥 마탐의 'Beached whale'

고래는 '에너지 자원'이었다

화석에너지 특히 석유가 본격적으로 인류의 에너지원이 되기 전까지 인간은 고래의 몸속에 저장된 기름에 상당기간 의존했다. 1850년대 중반부터 인류는 석유 탐사를 시작했고 그 후 10여 년 뒤쯤 첫 시추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석유 시추에 성공한 이후에도 고래기름의 사용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됐다. 태울 때 냄새와 그을음이 덜 한 장점 때문에 집안의 어둠을 밝히거나 조리용 등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또 산업혁명 이후엔 윤활유로도 많이 사용됐는데, 고래기름(특히 향유고래 기름)은 높은 온도에도 점성을 잃지 않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격렬히 움직이는 기계의 마찰열에도 고래기름이 큰 문제없이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열에도 강하고 점도가 높아 잘 흘러내리지도 않으니 기계의 상단부에 주로 향유 고래의 기름을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래야 말로 버릴 게 없다

출처 :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

고래의 속살은 식재료였다. 수염은 우산살이나 여성 속옷인 코르셋의 지지대로 활용됐다. 탄력이 좋아서 마치 스프링 같은 역할도 했다. 지방은 비누나 로션의 원료로 활용됐다. 심지어 배설물은 향수의 첨가물로 비싸게 거래됐다. 용현향이라고 부르는데 요즘도 이건 매우 비싸게 게 거래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활용도가 높고 인기가 있었던 건 고래기름이다. 사람들은 고래 기름을 얻으러 고래 사냥을 떠났고 하나의 산업이었다. 석유를 시추하고 정제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구상에서 고래는 씨가 말랐을지도 모른다.  

향유고래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작업은 정말 야만적이었다.
고래의 몸에서 가죽을 비롯한 갖가지 값나가는 부위를 떼어내는 일이 끝나자, 드디어 머리의 밑동을 자르는 일이 시작됐다. 고래의 정수리 위로 밧줄을 타고 내려가 분수공 주위의 부드러운 기름층에 구멍을 하나 뚫었다. 그는 로프의 길이에 맞춰 그 구멍 아래로 양동이를 넣었다. 그리고 잠시 이곳저곳 살피다가 릴에 감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양동이가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하얀 액체가 거품을 일으키며 철철 넘쳐흘렀다. 동료들은 그 귀중한 액체를 통 속에 쏟아부었다. 이 작업은 일렬로 놓인 통들이 모두 꽉 찰 때까지 백번 가까이 반복됐다. 이 액체가 바로 모든 고래기름 중에 가장 순도가 높다는 경뇌유였다... 향유고래의 머리에는 보통 수백 배럴의 경뇌유가 들어있다.  
허먼 멜빌 '모비 딕'에서  발췌


빛을 얻기 위한 잔혹한 사냥 '고래잡이'

고래기름의 활용 많아 가격이 비쌀 때는 고래를 잡은 후 고기는 바다에 버리고 기름만 채취했다고 한다. 냉장이나 냉동 기술이 없었으니 고기를 싣고 오랜 항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래를 생명체가 아닌 상품으로만 바라본 인간의 잔인함이 드러난 사례다. 과학기술이 발달이 지구를 살린다는 표현도 틀린말은 아닌 것같다. 석유를 시추하고 석유정제법을 인류가 알아낸 다음부터 등유와 가스가 고래기름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나프타가 고래 수염과 같은 부산물을 대신 쓰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되는 일에는 돈이 몰리기 마련이다. 당시 고래사냥, 포경업에는 꽤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대규모 선단을 꾸리기 위해 자본가는 물론 대중의 투자까지 받았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선주와 선원들을 모으고 항해 비용을 조달했다. 성공적 항해가 끝나면 결과물로 수익 배분을 하는 방식인데, 이는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도입한 주식과 채권거래가 활용된 것이다.



인용된 그림 자세히 보기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37854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349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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