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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 Apr 17. 2024

이런 변(便)이 있나... 용현향

바다에서 로또 맞을 확률


"용현향 때문에 고래가 병이 나서 죽는지, 아니면 고래의 병 때문에 용현향이 생기는지는 아무도 몰라.

어쨌든 이건 향수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되지. 향수를 즐겨 사용하는 왕이나 왕비는 그 향수의 근원이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고래의 썩은 뱃속이란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걸."    

소설 '모비 딕'에서


바다의 로또 '용현향'

구글 기사 캡처

가끔 언론을 통해 용현향을 발견한 사람이 로또를 맞았다는 내용이 전해지죠.  캡처한 기사로 추정해도 30kg에 15억 원이면 1kg 당 5천만 원, 1g에 5만 원이나 합니다. 몇 년 전 시세니 최근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를 감안하면 용현향의 가격은 더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죠. 금 값도 최근 많이 올랐잖아요. 1kg 당 10만 원이 넘었거든요. 금융시장의 불안이 반영돼 안전자산인 금값이 오를 거라고 분석하지만 사실 그만큼 돈의 값어치가 떨어진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을 금값에 반영한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용현향(龍涎香, ambergris)은 한자 대로 풀면 '용의 침에서 나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용은 동양에서 워낙 영험한 존재라 바다에서 혹은 해변에서 발견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신기한 물건을 용과 관련된 무엇인가로 이름 붙였을 것으로 추측되죠. 반면 서양에선 용현향을 ambergris(엠버그리스)라고 부르죠. 어원을 보면 아랍어 anbar(호박))과 프랑스어 gris(회색)에서 왔어요. 여기서 호박은 채소가 아닌 보석 호박을 말하죠. 딱딱한 것이 호박 같고 색은 회색을 띠고 있으니 이런 이름을 붙여 불렀다는 거죠. 어쨌든 동서양 어원을 어디를 살펴도 이 물건과 고래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값비싼 향수의 재료

용현향이 지금도 이렇게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구하기 힘든 데다 값비싼 향수의 재료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용현향 자체적으로도 향이 나지만 용현향을 활용하면 향수의 지속성을 크게 높일 수 있어 조향사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하죠. 고급 향수인 샤넬 No5. 에 용현향이 쓰였다고 알려집니다. 용현향은 수컷 향유고래에게서 만들어지는데, 이들이 심해에서 주식으로 먹는 대왕고래의 딱딱한 이빨 등이 소화되지 않고 소화액 등과 뭉쳐 있다 입이나 배설물로 배출된 것인데요. 오랜 기간 바다를 떠돌며 딱딱하고 회색빛으로 변해 발견되는 겁니다 특히 막 배설돼 나온 것보다 오랜 시간 일종의 숙성의 과정을 거칠수록 값어치가 올라간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고래잡이도 금지돼 있으니 예전보다 더 귀하게 된 상황입니다. 심지어 미국과 호주 등에선 고래 사냥은 물론 용현향의 거래 자체도 금지하고 있거든요. 멸종위기인 향유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해변에서 용현향을 발견할 확률 vs 로또 확률

어떤 번호가 당첨 확률이 높을까?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로또는 총 45개의 숫자 가운데 6개의 숫자를 맞춰야 1등이 됩니다.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이죠. 재밌는 건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생일 조합으로 로또 번호를 찍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겁니다. 어떤 번호로 찍던지 로또 1등이 될 확률은 같지만 생일 조합으로 1등이 될 경우 당첨금이 다른 번호에 비해서 적을 수 있다는 건데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가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생일 조합으로 로또 번호를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45개 숫자 중 1월에서 12월까지 12개 숫자와 1일부터 31일까지의 31개 숫자 조합으로 로또 번호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중복 당첨자가 나올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는 얘깁니다. 중복 당첨자가 있다면 로또 당첨금을 서로 나눠 갖게 되니 상대적으로 당첨금은 줄어든다는 얘기죠. 그래서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는 32부터 45까지의 숫자를 어떻게든 6개의 숫자 선택 조합에 포함하라는 얘깁니다.


그럼 우리가 해안을 걷거나 배를 타고 바다여행을 하다 용현향을 발견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계산할 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더구나 용현향을 본 적도 없고 그 향도 모르니 사실 용현향이 바로 옆에 있더라도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게 더 결정적이겠죠. 우연히 수컷 향유고래의 사체를 발견하더라도 뱃속에서 값비싼 용현향을 꺼내들 확률도 매우 낮습니다. 용현향의 값어치는 몸 밖으로 배출되고 세월을 견디며 딱딱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니까요. 배속에서 막 꺼낸 용현향은 밀랍처럼 끈끈한 상태라고 하는군요.



소설 '모디 딕"에 언급된 용현향


그가 로프를 손에 잡고 고래를 가까이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내가 항의했다

"냄새가 너무 지독합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면 으르렁거렸다.

"참을 수 없거든 입으로 숨을 쉬어, 저 칼을 이리 줘"

마른 고래는 이제 스티브의 손이 가죽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그가 칼로 고래의 꼬리 바로 뒷부분을 절개한 뒤, 어깨가 다 들어갈 정도로 손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등뒤에 있는 우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바로 이 주위에 있는 게 틀림없어"

그는 오 분 동안이나 고래 뱃속을 뒤적거렸다. 악취는 점점 더 심해졌다. 마침내 그가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곧 포기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향긋한 냄새가 공기 중의 악취와 섞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러면 그렇지! 난 우리가 해낼 거라고 믿었어."

그가 밖으로 손을 꺼냈다. 오므린 양손에는 비누가 뭉개진 것 같은, 밀랍처럼 끈끈한 물질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스티브가 경멸하듯 말했다.

"모두들 잘 봐, 이게 용현향이라는 거야, 향수 만드는 사람에게 팔면 일 그램당 꽤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지지, 내게 자루 하나만 줘."

스티브는 고래 몸 안에서 이 값진 용현향을 여섯 번이나 더 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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