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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가로등 그리고 화가

반고흐 '밤에 카페테라스'

by 김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아를의 좁은 골목을 걷던 고흐는 노란 불빛이 번지는 카페 앞에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이 카페 가로등이 만들어낸 빛에 의지해 낮보다 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흐도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압생트(Absinthe)"

그는 웨이터에게 압생트를 주문했다.


'이 환한 노란빛과 초록빛 술이 담긴 술잔이라니...'


압생트는 요정이자 악마인 술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녹색의 요정이라고 부르고 또 어떤 이들은 녹색의 악마라고도 부른다.


마음이 급해진다.

압생트의 독특한 향이 밤공기와 섞여 묘한 기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잔에 술을 따르고

구멍이 뚫린 압생트 스푼 위에 설탕을 올린다.

차가운 물을 설탕 위에 천천히 붓자 압생트로 물이 떨어지며 뿌옇게 변한다.


'그래 이 맛이야'

고흐는 설탕이 조금 더 녹기를 기다렸다 뿌옇게 변한 압생트를 입속에 털어 넣는다.


술기운이 퍼지자 노란 가로등 빛이 더 황홀하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짙푸른 가을밤에 더 선명하게 빛 난다.


환상인가 현실인가

뭔가가 뒤섞인 것 같은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다.

고흐는 압생트 잔을 내려 놓고 스케치북을 꺼냈다.


'이 풍경을 남겨야 해....'


밤에 카페테라스

반 고흐 '밤에 카페테라스'

반 고흐의 유명 작품 중 하나이다. 1888년 고흐가 프랑스에 머물 때 그린 작품으로, 여동생 윌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밤에 이곳에서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해"라고 적었다고 한다. 카페테라스를 밝히고 있는 노란색과 주황색 그리고 별이 있는 하늘의 짙은 파란색이 선명하게 대비돼 따듯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이 그려진 날짜를 9월 16일이나 17일로 추정한다는 것인데, 하늘의 별자리가 그 추정의 근거이다. 프랑스 남부 아를 지역의 9월 중순 밤하늘을 그림이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 실제 천문학자들은 물병자리의 일부와 전갈자리가 이 그림에 그려져 있다고 말한다. 같은 그림을 보면서 관심사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다는 것도 재밌지만 하늘의 별의 위치마저 대충 그려 넣지 않은 고흐의 꼼꼼함도 놀랄 일이다.



붉은 선-전갈자리 노란 선-물병자리

18세기 유럽을 밝힌 가스 가로등

한 밤 카페테라스가 온통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표현된 이유는 당시 유럽의 가로등이 가스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유채기름 등을 활용했던 가로등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가스를 주원료로 사용하게 된다. 다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천연가스가 아닌 석탄에서 추출한 가스였는데, 탄화수소 성분이 많은 석탄가스는 타는 과정에서 불완전 연소된 탄소 입자들이 빛을 방출하며 노란색을 띤다고 한다.


가로등을 생각해 낸 화가, 얀 반 데르 헤이덴(Jan van der Heyden)

얀 반 데르 헤이덴

사실 가로등만큼 그림과 깊게 연관된 물건도 없다. 가로등을 고안한 사람이 네덜란드의 얀 반 데르 헤이덴(Jan van der Heyden, 1637년 3월 5일~1712년 3월 28)이란 화가이다. 암스테르담 출신인 그는 도시풍경을 전문으로 한 최초의 네덜란드 화가 중 한 명으로, 암스테르담과 네덜란드의 이곳저곳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화가이자 발명가였으며 사업가로서도 성공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발명품이 유채기름에 목화 심지를 담가 등을 만들고 그걸 높은 곳에 매다는 방식의 가로등을 고안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로등 시스템을 암스테르담시에 직접 제안했고 가로등 관리관으로 활동하며 암스테르담시의 저녁을 밝혔다.


얀 반 데르 헤이덴이 고안한 가로등

밝아진 저녁의 대가는 세금

기록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시는 1669년 1800개를 시작으로 1681년까지 2400개의 가로등을 설치해 운영했다고 한다. 또 얀이 개발하고 제안했던 이 가로등 시스템은 1840년까지 무려 170년 동안이나 사용됐다.

1600년대 후반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이끈 도시였는데, 가로등 시스템도 한몫을 했다. 칠흙같은 어둠을 몰아내자 사고와 범죄가 줄었고 사람들이 더 늦은 시간까지 활동하자 상인들의 직간접 소득이 증가했다. 하지만 대가도 치뤄야했는데, 암스테르담시는 가로등 설치와 유지 관리를 위해 세금을 올렸다. 정확히 얼마의 세금을 올렸다는 기록은 없지만 세금을 올려 가로등 설치 비용을 충당했다는 기록은 남아있다.


‘암스테르담의 Oude Kerk가 있는 OZ 포르부르부르발의 풍경'

얀 반 데르 헤이덴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건축화가이다. 세밀한 묘사가 특징인 그의 그림엔 당시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생활모습과 건축 양식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암스테르담의 Oude Kerk가 있는 OZ 포르부르부르발의 풍경’이라는 작품엔 이런 특징이 매우 잘 나타나있다.

'Oude Kerk가 있는 OZ 포르부르부르발의 풍경'

‘Oude Kerk’는 우리말로 오래된 교회(old church)라는 뜻이다. 뾰족 솟은 첨탑으로 연결된 건물 Oude kerk(오래된 교회, 아직도 암스테르담에 남아 있다)를 중심으로 건물 폭은 좁지만 상층부가 계단형으로 좁아지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전통 건물들이 운하 주변에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이다.


세금은 건물 모양도 바꾼다.

운하주택이란 뜻의 네덜란드어 흐라흐텐판트(Grachtenpand)라고 불리는 이 전통주택의 특이한 모양은 17세기 암스테르담시의 독특한 세금 체계가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시는 건물 정면의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건물주들은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려면 건물 정면은 최대한 좁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앞은 좁고 건물은 길고 높은 흐라흐텐판트의 독특한 양식이 만들어졌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아직 남아 있는 폭이 가장 좁은 집은 정면이 겨우 1m 내외라고 한다. 이 집은 뒤로 가면 폭이 점점 넓어져 5m가 된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덜 내기 위한 자산가들의 노력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참고자료>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errace-of-a-caf%C3%A9-at-night-place-du-forum-0000/vAHKM2R5vOqbmg?hl=ko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view-of-oudezijds-voorburgwal-with-the-oude-kerk-in-amsterdam-0001/vQEPZWhUPsTvug?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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