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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Nov 19. 2020

닥치고 쓰다 보면 나오던데요

생각도, 감정도 다 날아가지만 글만은 남더라

브런치 작가 입문 2주차. 이런저런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단어나 문장을 끼적여 작가의 서랍에 넣어두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글은 제목을 먼저 생각해서 쓴 다음 제목에 맞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써 내려간다. 사람마다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 줄의 카피를 계속 곱씹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편인 것 같다. 일단 제목을 정하고 나면 집중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5분이 될지 10분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진짜 말 그대로 닥치고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뭐가 나오긴 나온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점은 지금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활자로 남겨서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도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버리지만 그것을 잘 정리해서 기록해 둔 글은 지우지 않는 이상 계속 남아있다. 그리고 글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과는 달리 바로 나가지 않고 내가 충분히 생각하고 곱씹어서 아, 이건 남길만 하다 싶은 것만 걸러내기에 조금 더 친절하고 사려 깊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끄럽고, 내가 왜 이렇게 썼지? 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바로 지워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한 편의 글을 쓰며 내가 숙고했던 시간과 수고를 알기에 부끄러움 또한 내 몫으로 두고 미숙함 조차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동안 여러 통로를 통해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도 여기에 글을 올려봐야지 마음먹은 것은 정말 불과 2주 전의 일이다. 그 마음이란 걸 먹고 작가소개와 글 한편을 써 작가신청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작가신청이 카페등업처럼 신청만 하면 다 되는 건 줄로만 알았다. 이틀 뒤 작가신청이 수락되어 글을 올리게 되고 친한 친구에게 우연히 이야기했더니 이 브런치 작가신청이라는 것이 무조건 다 되는 것은 아니고 나름의 심사과정이 있어서 탈락하는 사람도 통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내심 기분이 좋아지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올려야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날도 글 한편을 올리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다. <'엄마들이여, 그냥 쓰세요' 글의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그 후로 2천, 3천 계속해서 알람이 울리고 자정이 되어서는 조회수가 3만이 넘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자세히 알아봤더니 조회수 통계 페이지에 유입경로가 기록되는데 대부분 모바일다음에서 조회를 한 사람들이었다. 아마 모바일다음에 내 글이 소개되어 사람들이 클릭을 많이 해 본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조회수를 염두해서 글을 쓴 게 아니었고 나에게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조회수 떡상?이 일어날 거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나선 브런치 작가신청이 한 번에 통과되었다는 것에 감사했듯, 이번에도 우연한 기회로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거나 눌러라도 봐 주셨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며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




얼마 전 내 최애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5년이라는 긴 연재 끝에 완결되었다. 이 웹툰의 주인공 유미는 회사 경리부에 일을 하다 우연한 기회로 기획팀에서 글을 쓰게 되고 나중에는 퇴사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웹툰의 거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유명 작가가 된 유미가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 나온다. 유미는 '좋은 글은 어떻게 쓰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좋은 기분이 좋은 글을 쓰게 한다고 믿는 편이다'라고 답하며 이도 저도 안되고 글이 막힐 땐 잠시 글 쓰는 걸 멈추고 다른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환기를 시키다 보면 툭 하고 뭔가가 떠오를 때가 있다는 거다.

유미가 말한 '좋은 기분이 좋은 글을 쓰게 한다'는 전제에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거기에 나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좋은 기분이 좋은 글을 쓰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글을 계속해서 쓰다 보면 글 쓰는 내 삶 자체가 좋아지게 된다' 고 말이다.  


예전부터 죽기 전에 꼭 내 이름 석자 새겨진 책 한 권은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말 그대로 이뤄지지 않은 '소망'으로만 남겨두고 있었는데 일단 틈이 나면 닥치고 쓰기 시작하니 하나 둘 글이 쌓여가고 있다. 누구나 혹 할 만큼 신박한 출간 기획안이나 세련되고 일목요연한 목차 따위 없이 그저 떠오르는 제목 한 줄에 의지해서 한 편 한 편 써나갈 뿐이지만 빈약하고 일천한 글이라 할지라도 모이면 그게 곧 나의 이야기이고 내 책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글 쓰는 나의 삶을 계속해서 사랑하고 그 사랑에 힘입어 기록해 나가다 보면 나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꽤 괜찮은 작가가 돼 있을 거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범 내려온다” 와 “문보영”이 내게 가르쳐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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