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자신 Aug 23. 2021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추면.

-내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 내 얼굴이 스쳐 지나갈 때

 며칠 전 늘 가지고 다니던 손거울이 깨졌다. 어디서 어떻게 깨졌는지도 모르게, 화장을 하려고 파우치에서 거울을 꺼내며 그 거울이 깨져버렸단 걸 알았다. 때마침 회사 복직을 축하한다며 친한 동생이 선물해준 립스틱에 손거울이 함께 동봉되어 있어 깨져버린 거울은 버리고 새 거울을 파우치에 챙겨 넣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복직 후 일주일이 지났다. 금세 적응을 한 건가 싶었지만 사무실 출근을 하루 하고 다시 재택근무하는 날, 아침에 일어난 아들이 잠을 더 자겠다며 어린이집 차량이 도착할 때까지 일어나질 않는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둘째만 가방을 챙겨 차량으로 보내고 누워있는 첫째는 내버려 둔 채 노트북을 켜서 아침 회의(zoom)에 참가했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 아이에게는 미리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 아빠는 집에 있더라도 일을 해야 해서 너랑 놀아 줄 수 없어. 어린이집에 안 가면 오늘 집에서는 혼자 놀아야 해.”  아이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이내 내가 있는 안방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눈치를 보다 내가 나가라고 하니 눈꼬리가 축 쳐진 채 밖으로 나간다. 들락날락할 게 뻔해 아예 방 안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20분쯤 지났을까 남편이 방문을 두드린다. 나가보니 아들이 아빠 손을 잡고 말한다. “엄마, 할 말이 있어요. 내가 아침에 안 일어나고 밥도 안 먹고 어린이집 안 간다고 해서 미안해요.” 아이의 입 주변에는 빵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아침으로 함께 먹으려고 식탁 위에 올려놓은 빵을 혼자서 먹었나 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마는 안방에, 아빠는 서재에 있는 동안 혼자 식탁 의자를 옮겨서 그걸 밟고 올라가 빵을 먹은 모양이었다. 얼굴에 빵가루를 잔뜩 묻히고 미안하다고 하는 아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내가 먼저 출근을 하고 아빠가 혼자 챙겨 보낼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데, 엄마가 집에 있는 걸 보니 괜히 응석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아이를 차에 태워 뒤늦게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아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돌아나가는 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그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내 얼굴이 잠깐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일 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가끔은 우리 엄마도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비가 많이 오는데 우산 없이 학교에 간 날은 엄마가 우산을 챙겨 학교로 마중 나온 친구들이 부러워 일부러 비를 쫄딱 맞은 채로 엄마가 일하는 병원까지 찾아가기도 했더랬다. 엄마가 멀리 간 것도 아니고 저녁이면 다시 볼 수 있는데도 그때는 엄마의 모든 시간이 내 것이어야 한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런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셨던 건지 퇴근을 하거나 주말이 되면 그 시간을 오롯이 나와 언니를 위해 쓰셨다. 그때 나는 몰랐다. 엄마의 시간이 당연히 내 것이었던 게 아니라 엄마가 자신의 모든 시간을 그 어떤 대가 없이 우리에게 다 내어주었단 것을.




아이와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보다 시간의 질, 밀도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30분, 아니 단 10분이라도 아이와 밀도 있게 교감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걸로도 아이는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말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확 줄어드니 내가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이게 맞는 걸까. 늦은 시간까지 어린이집에 남아 있으면서 우리 아이들, 잘 자라고 있는 걸까.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너 혼자 놀아야 해”라는 말로 겁을 주는 대신, “그래,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자. 대신 엄마가 일을 하는 동안 옆에서 놀면서 기다려 줄 수 있어?”라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질문에 조차 아이가 “싫어”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엄마 곁에 있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한 번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면 왜곡된 내 얼굴이 보인다. 거울이 온전해야 거기 비친 얼굴도 선명하게 보인다. 지금 내 아이의 얼굴에 어린 아주 가느다란 슬픔도 어쩌면 내 마음이 깃든 것일지 모를 일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속상하고 깨진 마음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꺼내 보였을 때 말랑말랑한 아이의 마음은 상처 입기 쉽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소중한 아이를 위해 먼저 내 마음의 거울이 어떤지 살펴보고, 깨지지 않도록 그리고 때가 타지 않도록 그래서 그 거울에 무엇이든 깨끗이 잘 비춰볼 수 있도록 애쓰는 하루가 되길 소망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에 두 번 출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