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둘째가 잠깐 낮잠 타는 틈을 타서 하루 30분, 길게는 1시간 글을 쓰던 그 순간이 참 행복했더랬다. 차분히 내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주는 질문, 통찰, 마음가짐들을 글로 정리해 내는 작업은 결과물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참 소중한 것이었다.
글쓰는 시간이 나에게 그토록 소중했건만,
육아휴직이 끝나고 다시 직장에 돌아가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글쓰기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사실 복직 후에도 한동안은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꾸준히 글을 써보려 애썼지만 워킹맘의 하루는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았고, 그렇게 퀘스트를 깨듯 '해야 할 일 목록'을 지워나가면서 나의 '글쓰기' 시제는 과거 또는 먼 미래가 되어버렸다.
쓰는 것은 멈췄지만 그 사이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예기치 않은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이 일들을 잘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지만 쉽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쓰기에 대한 내 '열망'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의외의 지점에 있었다.
친구가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바로 그 사진이 다시 글을 써야겠다, 쓸 수 있다는 생각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친구는 우리 아이들보다도 더 어린 나이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집에서 쓰는 작은 책상 하나를 사서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다. 아기 책상이 아니었다. '엄마의 책상'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아기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창작인으로 앉아 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는 그 책상에서 영상편집을 하고 있단다.)
당장 DM을 보내 구매링크를 물어보았다. 친구는 심지어 자기는 제값을 주고 샀지만 지금 20% 할인까지 한다며 내 불붙은 구매의지에 화력을 더해주었다(고마워, 박PD❤️)
며칠 뒤, 책상이 도착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만의 작업실이 생겼다.
거실 귀퉁이, 창문 한견에 책상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남편이 기꺼이 나눔 해준 노트북까지 장착하니 어엿한 나만의 작업실 완성이다. 당연히 이 글은 내 작업실에서 쓰는 첫 번째 글이고, 친구가 올린 책상 사진 덕분에 나의 글쓰기 시제는 다시 현재가 되었다.
공간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족들과 늘 함께하는 장소인 거실 귀퉁이에 책상 하나를 놓았을 뿐인데, 아이들이 아직 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이 책상에 앉으면 그곳이 바로 내 작업실이 되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있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한 가닥씩 그것을 풀어내어 정리해 내는 작업. 이 작은 책상 하나가, 내가 작업실이라 부르는 이 공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앞으로 여기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 볼 생각이다.
어떤 글이 되었든, 쓰기라는 작업 그 자체만으로 채워지는 나만의 충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 목록'은 하나도 줄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 목록'은 하나가 더 생겼으니 작지만 소중한 이 공간에서 내 내연과 외연을 조금 더 선명하고 단단한 것들로 채워나가려 한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