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유은이에게
너의 네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유은아. 막상 너한테 편지를 쓰려하니 조금 쑥스럽네. 더구나 아직 글자를 모르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이 긴 글을 직접 읽어준다 해도 끝까지 앉아 있어 줄지 의문이야.
그래도 언젠가 네가 이 글을 직접 읽을 날을 상상하며 오늘 만 네 살이 된 너의 생일을 있는 힘껏 축하해.
2020년 6월 17일.
4년 전, 오늘 엄마는 세상에게 가장 예쁜 너를 만났지.
둘째라서 방을 빨리 뺄 줄 알았는데, 예정일이 다가와도 진통이 없어서 엄마 뱃속이 아직 좋은가보다 하고 마지막 검진 차 병원에 갔단다. 그런데 자궁문이 열렸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입원을 하라는 거야.
출산 가방도 다 안 싸 놓았는데, 갑자기 입원이라니. 그 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뭘 미리 해두는 편은 아니었거든.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너무 늦게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어. 그래서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오빠를 외할머니댁에 맡기고, 엄마가 마무리하지 못한(?) 출산 가방을 잘 챙겨서 병원에 와 달라고 했지.
아빠를 불러놓고 혼자 분만대기실에 누워있는데, 너와 보낸 열 달이 눈앞을 스쳐가더라.
15주 무렵에 받았던 1차 기형아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어 대구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정밀검사를 했지. 처음에 1차 검사를 받고 결과가 좋지 않아서 양수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담당 의사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정밀 검사를 할까 말까도 고민을 많이 했었어. 결과가 어떻든 너를 낳을 건데, 검사를 꼭 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계속 불안해하며 임신기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어.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주님께 맡긴다고 기도하며 검사를 받았지.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받은 정밀 검사에서는 염색체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어. 첫 번째 검사 이후 2주가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짧은 기간이 엄마한테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지.
너를 임신하고 있었을 때는 엄마가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어. 직접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해야 했는데 안 그래도 잠이 많아 별명이 '또자'인 내가 배 속에 아기까지 있으니 얼마나 졸렸겠어. 한 번은 비 오는 퇴근길 고속도로 출구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택시랑 쾅, 또 한 번은 아파트 주차장에 진입했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깜빡 졸아서 주차된 차량이랑 쾅. 그렇게 두 번이나 교통사고가 났단다. 돌이켜보니 우리 유은이가 건강하게 무사히 태어나 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렇게 열 달을 보내고 너를 만나기 위해 병원 분만실에 누워 있는데, 금방 나올 거 같던 네가 또 감감무소식인 거야. 꼬박 하루를 분만실에서 보내고 다음날이 되었어.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머리가 밑으로 내려와야 자궁문이 더 열려서 나올 수 있는데 지금 아기가 옆으로 누워있다고, 아기 위치를 바꿔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한참을 이쪽저쪽 움직이고, 큰 짐볼 위에 배를 대고 누워서 선생님이 시키는 동작을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꼼짝 않던 네가 드디어 밑으로 내려온 거야. 그다음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지? 드디어 우리 집 둘째, 유은이가 탄생했지.
유은이가 태어난 무렵에는 한창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어. 그래서 병원, 조리원에서도 다른 가족들은 전혀 만나지 못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냈지.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코로나 덕분에 오로지 너와 나, 두 사람이 온전히 함께할 수 있었어. 필연적으로 "둘째", "동생"의 타이틀을 달고 나온 너에게 어쩌면 꼭 필요한 시간이었을지도 몰라.
근래 말이 부쩍 더 많아지고, 작아진 옷도 많아진 너를 보면서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삼 놀라게 된단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엄마보다도 훌쩍 커버린 너를 보게 되겠지. 그날을 상상하다 보면 마음 한견이 따끈하면서도 또 뻐근하기도 해. 아침에 일어나면 부스스한 머리로 제일 먼저 "엄마"를 부르는 너의 어리광이 벌써 그리워지는 느낌이거든.
너의 생일을 기념하며 쓴 이 편지 덕분에 네가 엄마에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딸인지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사랑하는 내 딸, 유은아.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