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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Oct 19. 2022

사서하는 고생

시제가 'ㄱㅅ'인 글쓰기

얼마 전, 나도 아이들도 다 쉬는 공휴일에 남편은 출근을 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평소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는 법이 거의 없는 나지만, 집에만 있기에는 이 좋은 가을이 너무 짧은 듯하여 큰맘 먹고 외출을 감행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남편이 오후 출근이라 일단 남편과 함께 외출해서 미리 예약해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먹인?) 뒤 남편이 떠난 후에는 아이 둘을 데리고 인근 백화점 안에 있는 키즈카페로 향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공원에 나가볼까 생각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5세, 3세를 그것도 혼자서 야외에 데리고 간다는 건 마치 야생마 두 마리를 울타리 없는 초원에 풀어두는 것과 기에 일찌감치 포기. 실내 키즈카페는 한정된 공간이다 보니 그나마 혼자서 아이 둘을 챙기는 게 가능했다.


다섯 살 첫째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곧잘 고, 그 덕에 나는 요즘 호기심 끝판왕인 둘째를 전담 마크하며 어찌어찌 2시간이 지나갔다. 이용시간 종료가 임박하여 아이들을 챙겨 나가려는데 뒤늦게 볼풀장에 꽂힌 둘째가 드러눕고 나갈 생각은 안 한다. 퇴장시간의 압박 앞에 내 등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첫째를 챙기는 틈에 잽싸게 달아나는 둘째를 얼른 낚아챘다. 결국 비장의 카드, 뽀느님(뽀로로) 영상으로 유인하여 겨우 바깥으로 나왔다.


외출 3시간 만에 진이 다 빠져 바로 집으로 갈까 싶었지만, 나온 김에 사야 할 것도 있고 해서 근무가 끝난 친정엄마에게 지원 요청을 날렸다. 엄마를 기다리며 아이들과 함께 백화점 지하 분수대 쪽으로 내려갔는데 벤치에는 자리가 없어 종이를 깔고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한 명은 유모차, 한 명은 내 무릎 위에 앉히고 뽀로로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까운 벤치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날 부른다. "애기 엄마! 여기 자리 났어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아이들을 챙겨 자리에 앉는데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애 둘을 혼자 데리고 다니려니 고생 많죠?" "아, 안 그래도 애들 할머니 오신다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 대답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측은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같은 여자로서 느끼는 연민이나 공감의 눈빛일 수도 있었겠으나 썩 유쾌하지 않다. 그리고 스스로 반문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정말 고생인가?'


고생: 어렵고 고된 일을 겪음. 또는 그런 일이나 생활[네이버 국어사전]


그래, 사전적 의미만 따진다면 고생이 맞는 거 같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어렵고 때론 고되기까지 하다. 덕분에 나는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 현타를 맞는다. 하지만 이 고생 앞에 붙을 수 있는 수식어가 다르다. 얻는 것 없이 고생이 고생으로만 끝나는 경우를 헛고생이라 부르지만 고생 끝에 낙이 기다리고 있을 때, 고생 뒤에 따르는 분명한 열매와 성과가 있을 때의 그 고생은 사서 하는 고생, 의미 있는 고생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분명한 아웃풋이 있는 고생이고 그래서 의미 있는 고생, 사서 하는 고생이다.


그렇다고 내 아이들이 자라서 내 고생을 알아주고 나를 떠받들며 살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내 아이들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다. 자다가 쉬를 해도 말없이 옷을 갈아입혀 주고 이불을 갈아준 기억, 소풍날 새벽 일찍 일어나 김밥 말아준 기억, 아플 때  체온을 재고 약을 먹여주던 기억. 그저 존재 자체로 온전히 사랑받았던 그 기억으로 내 아이도 또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 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고생은 고생인지라 당연히 힘도 들고 눈물도 나고 다 때려치우고픈 날도 있겠지만 이 고생 끝에 맞이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엔딩을 기대하며

오늘도 파이팅! 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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