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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맘 Feb 09. 2022

9.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내 집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좀 낯선 느낌, 뭐랄까 비워뒀던 집에 돌아와 보니 여행 동안 여기저기 먼지가 쌓인 것도 같은... 뭐 그런 느낌이 방사선 치료 이후로 계속되고 있다.

못 견딜 만큼 아주 많이 힘들지 않았지만, 유방암 진단을 받던 지난 10월 초 이후로 벌써 4개월이 지났고 나는 그 사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신체적인 회복은 차치하고, 나는 과연 예전의 나로, 그 치열했던 나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요새 들어 부쩍 많아졌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매일을 시간 단위로 쪼개어 움직이던  그 치열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우 독립적이고, 계획 세워 목표 달성하기 좋아하고, 부모님이 공부해라 연습해라 기타 등등의 잔소리를 하시지 않아도 알아서 잘했던 주변에서 소위 말하는 '모범생'  내지는 '타고난 장녀'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고 자랐다. 크면서는 소위 말하는 '쿨 병'에 걸린 사람 마냥, 늘 씩씩하고 활달하고 적극적으로 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쿨 한 엄마, 시댁 식구들에게도 믿음직한 맏며느리, 친구들에겐 항상 유쾌하고 허물없는 친구, 교회에서도 신실한 집사,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멋진 선생님...

글로 쓰다 보니 기가 막히고 코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그런 무모한 욕심을 늘 품고, 나를 들들 볶아대며 남들 모르게 완벽을 추구하며 살았구나 싶다. 초-중-고- 대학교까지 소위 말하는 최고의 학교들만 다니고, 한국과 미국을 수시로 오가며 양쪽에서 애들도 학교 보내고, 두 나라를 오가면서도 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인생에 무슨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을까 할 수 도 있겠고, 나 역시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며 50 평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괜찮다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괜찮아야 한다고, 남들이 절대 내가 힘들거나 외로워하는 걸 알면 안 된다고...


내 인생에서 좌절의 순간이 언제였냐고 누가 물어오면, 대학입시에 첫해 실패해서 재수학원을 일 년 다닌 거, 첫애와 둘째 사이에 몇 번의 유산을 했던 거, 그리고 한국서 엄마가 갑작스러운 폐암 진단으로 일 년 정도 투병하셨을 때 나는 미국에 있어서 옆에 있어드리지도 못했고 결국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거... 그런 대답을 했었다.

사실 그게 무에 그리 내 인생 좌절의 순간일 수 있을까...

사전적 의미의 '좌절', '어떠한 계획이나  따위가 도중에 실패로 돌아감' 이라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위에 열거한  가지의 좌절 모멘트 들은,  계획에서 어긋난 것들 내지는  계획에 있지 않아 속이 상했던 경험들이었다고 말하는   맞는  같다. 나는 계획에 없던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으로 인해 뭔가 주변 상황과 무엇보다도  감정이 흐트러지는  너무나도 싫었다.  공부나  뿐만 아니라, 남편, 아이들의 일도 그랬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흐트러진  감정을 혹여 누가 알까 싶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데에  집중했던  같다.  감정 따위는 아무도 모르게  밑에  깊숙이 꾹꾹 눌러두고... 아프고 힘들  그렇다고 얘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주변에 도움도 청하고... 그렇게 했어야 했었다는 것을,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불과   전에 깨달았으니,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겉으로만 멀쩡하게, 에는 상처투성이의 어린아이 하나를 품고 50 넘게 지내온 것이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암 진단, 수술, 방사선 치료 역시 나는 주변에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았고, 억장이 무너지는 내 감정을 누가 알아채는 게 싫었고, 걱정을 해주는 것도, 자세히 물어오는 것도, 이렇다 저렇다 정보를 날라다 주는 것도... 그냥 싫었다. 내가 혼자 알아서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그리 유지해왔듯이 이것도 내가 잘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누가 아는 척을 해오면 괜스레 부담스럽고 짜증 나고 뭔지 모를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내 감정은 나도 모를 총체적 난국이었다. 계속 쿨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너무 속이 상했다.


그러나, 몇 달에 걸친 수술과 치료를 받아오는 동안, 나의 뾰족하고 날 서있던 감정들이 하나 둘씩 다듬어지고, 이제는 좀 놓고 살아도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면서 스스로 칭찬을 해주지도, 어느 누구에게 힘들다 말을 하지도,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참고 나의 모든 감정들은 꾹꾹 마음속에 감춰두고, 사람들에게 밝고 긍정정이고 쿨하게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살아왔던 걸까 하는 반성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터닝포인트이고 하나님이 주신 귀한 휴식의 시간이지 싶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수술받던 날 아침, 창밖으로 보았던 아침햇살과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늘 오가던 길에 쏟아지던 정오의 햇살이 결코 나에게 똑같은 것일 수 없었듯이, 유방암 진단 before - after는 내 인생에 있어 결코 똑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전에 내가 그리 중요하게 여기며 붙잡고 살아온 많은 것들은,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급급했던 나의 여유 없고 팍팍한 삶의 조각들에 지나지 않았다. 더 여유 있게, 따뜻하게, 작은 것들에도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내 인생을 채워가고 이끌어가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건방진 나 자신이 아니라 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진작에 인정하고 믿었다면, 내가 그렇게 남모르는 긴장의 연속인 삶을 살 이유도, 채우고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으로 그저 괜찮은 척, 쿨한 척, 그렇게 가면을 쓴 삶을 살 필요도 없었는데, 나는 이제야,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것을 깨닫고 손가락이 으스러지도록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펴고 힘을 뺄 수 있게 되었다.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나서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다고, 자만하고 기쁨에 들떴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되어가면서 '아, 내가 괜찮지 않구나, 힘이 드는구나' 조금씩 실감하고 인정하게 되었고, 아마도 예전의 내 에너지 레벨을 다시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치 여행을 마치고 내 집에 들어와 낯설어하는 느낌으로 우왕좌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전의 나로, 하루 종일 시간차로 돌아다니는 빡빡한 일정으로 뛰어다니면서도 "나는 괜찮아 , 멀쩡해!" 하는 원더우먼의 삶으로 회복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이제는 조금 느리게, 조금 덜 이루어가는 삶이어도, 하나님 앞에서,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내 감정에 예전보다 솔직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감사한지 알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암 진단받기 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제는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절대로 그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암 진단을 한번 받고 나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가능성보다는 두렵고 걱정스럽고 매번 받는 검사들, 치료들을 앞두고 가슴 졸이며 살게 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른 삶이라 해도 앞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매일의 시간은, 그분이 허락하신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일 것이고, 좀 더 여유 있어지고 나와 주변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성숙된 삶을 살 수 있는 멋진 시간일 테니 뒤돌아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앞만 보며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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