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 적응하기 2
MBYFeb 5. 2025
11월에 첫째 아이의 생일파티를 뻑적지근(?)하게 치르고 글을 썼었다.
그때 처음으로 조회수가 매일 몇천 단위로 올라가는 영광을 접했다.
그리고 벌써 석 달이 흘렀다.
1월은 아주 바쁜 달이다. 아주 길고.
어제는 Lunar New Year's Day였다.
그리고 우리 집 둘째 귀요미의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치렀기에 실제 생일은 떡국을 먹으며 소박하게 보냈다.
아이의 생일파티는 지난주 토요일에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걸리는 가까운 곳에 넓은 체육관이 있기에 한 달 전에 그곳을 예약했다.
체육관은 짐내스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다.
참. 마셜아츠도 함께 한다.
넓은 체육관의 일부를 마셜아츠 도장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대부분 남자아이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출석한다. 내 눈에는 태권도복으로 보였는데 일본인들이 보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마셜아츠의 언어적 기원을 나무위키에 물어보았다.
마셜 아츠(Martial Arts)라는 단어 자체의 기원은 동아시아의 한자 단어 무예/무술을 영어로 직역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주류다. OED에서는 1920년판 Takenobu's Japanese-English Dictionary를 처음 사용된 예로 꼽고 있다. 메리안 웹스터 사전에서는 1904년을 첫 사용으로 꼽고 있고, 19세기말을 꼽은 사전도 있으나 이쪽은 명확한 레퍼런스는 불분명.
서양 검술가인 존 클레멘츠는 Martial Arts라는 단어가 라틴어 마르스의 기예(Arts of Mars)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중세 말~르네상스 초 시기의 서양 검술 사료에서 보면 그들의 무술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로 기예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그 외에 Noble Science of Defence 등의 표현도 자주 썼는데, (막싸움과는 구분되는) 정제된 합리적인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noble science라는 단어로 표현한 듯.
아마도 태권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각종 무예를 가르치는 수업인듯하다.
다시 생일 파티로 돌아와서.
아이는 주 1회 짐내스틱 수업을 듣고 있고.
7살 또래의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은 한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에
몸으로 노는 장소를 선택했다.
생일파티를 하는 90분 동안 코치 3명이 아이들을 지도 혹은 관리해주기 때문에
안전상의 우려가 적고, 특히 겨울철에 따뜻한 실내에서 땀을 흘리며 놀 수 있어
초대받은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맡겨두고 다른 볼일을 보러 가기도 좋다.
작년 가을부터 부쩍 생일파티 초대가 많았다.
그래서 미국의 생일파티 문화를 조금 더 체험할 수 있었다.
우선. 여기 저학년들은 e-card로 초대장을 보낸다.
구글에서 광고하는 전자형 초대장 웹사이트에 가서 회원가입을 하고
생일파티 장소. 시간. 등등을 입력한다.
물론 유로 카드와 무료카드가 있다.
학교 담임선생님께 문의하면 같은 class의 친구들의 비상연락처(이메일, 전화번호)가 나오는 엑셀파일을 주신다. 파일에 나오는 학부모들의 이메일로 무료전자초대장을 전송한다.
부모님들은 보통은 발송 후 이틀 안에 참석여부를 회신한다.
이점이 아주 신기했다.
메일을 자주 확인하는구나. 생파 참석여부를 이렇게도 신속하게 결정하고 친절하게 메시지까지 적어서 회신을 하는구나. 등등.
회신받은 참석자 명단에 따라 생일파티의 규모를 정하고
예약해 둔 체육관에 참석자 명단을 보낸다.
그리고 다시 가을에 있었던 농장의 생일파티처럼 2주 전에 풍선, 헬륨가스, 구디백, 각종 데코레이셔을 준비하고
파티 이틀 전에 월마트에 가서 주스, 스낵 등등을 준비한다.
파티 전날에는 우버이츠로 피자를 예약 주문한다.
그리고 당일 아침에는 쿠키를 굽고 과일을 씻고, 케이크를 구입한다.
파티 30분 전, 미국의 7살 여자아이는 유니콘을 사랑하니 유니콘 느낌이 물씬 나는 파스텔톤 레인보우 풍선에 헬륨가스를 가득 불어넣어 차 트렁크에 실었다.
파티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손에 헬륨풍선을 세 개씩 쥐어주려면 예쁜 은색 끈으로 묶어서 -
문제는 차 트렁크 안에서 이 끈들이 완전히 서로를 끌어안아 버린 것이었다.
서로 뒤엉켜서 정말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생일파티에 온 친절한 두 엄마가 적어도 20분가량 뒤엉킨 50여 개의 풍선의 매듭을 푸느라 진땀을 흘렸다. 우리 셋은 서로의 호구를 조사하며 퍼즐을 풀듯 매듭을 풀었다. 어쩌면 잘된 일인 것도 같았다.
미국의 생일파티에 갈 때마다 가장 난감했던 그 뻘쭘함. 을 뒤엉킨 실타래가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파티에 가면 아이들은 모두 한 모습으로 신나게 놀지만 부모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안면 있는 부모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
혼자 구석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하는 사람.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거나, 사교성이 덜한 부모님들에게 생일파티 2시간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데 마음대로 뒤엉켜버린 풍선 매듭을 풀면서
나는 브라질에서 왔고 우리 언니 이름은 벨라이며, 우리는 15년째 여기 살고 있다거나
우리 아들들은 사춘기가 없어요. 어머 정말 복 받았네요. 라든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웠다.
아직도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나 어색한 나는 풍선과 아이컨택하며 대화를 하는 그 시간이 휴식과도 같았다.
아이들의 아빠가 함께 하지 못하니
파티 준비와 마무리,
파티 중에 부모님들에게 간식이나 음료를 권하고
중요한 순간에 사진을 찍는 일까지 모두 나만의 미션이 되었다.
옛말은 늘 옳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10살이 된 첫째는 파티장 벽에 귀여운 풍선들을 야무지게 붙여주었고
본인이 초대한 친구 두 명과 함께 파티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구디백을 나누어 주었다.
풍선 매듭을 함께 풀어준 브라질지언 엄마는 파티동안 영상을 찍어주었고
다른 엄마들도 함께 아이들에게 피자와 케이크를 나누어 주었다.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주문을 받아 주스와 물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체육관 코치는 토요일에도 출근하여 아이 곁에서 내내 함께 있어주었고
피자를 배달해 준 아저씨도 생일축하한다며 아이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나의 잇몸이 되어준 사람들이 참 여럿이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것은
미국 어린이들의 생일파티에는 아빠들이 절반정도 참석한다.
그들은 아주 능숙하게 아이들은 돌보고 파티 호스트를 돕기도 한다.
아빠와 엄마들이 적절히 섞여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아주 조화롭다.
그리고 다정한 남자아이의 아빠는 역시 다정하다.
여기서는 sweet 하다고들 하던데
우리 둘째와 아주 잘 노는 한 남자아이는 대체로 여자 아이들과 잘 노는데
이 아이의 아버지는 한 달 전에 다른 생일파티에서 단 한 번 만났던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었다.
한국식이고 받침도 많은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면서.
나는 그의 이름을 전혀 기억도 못하는데 말이다.
부끄럽고 또 감사했다.
파티가 끝나고 아이들은 저마다 양손에 둥실둥실 풍선과 구디백을 들고 돌아갔다.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늘 행사가 마치면 느끼지만 더 많이 줄걸. 돈 좀 더쓸 걸. 후회를 한다.
다행히 베지테리언을 지향하는 10살짜리 딸아이의 친구에게 비건피자를 선물할 수 있었고
깨끗하게 남은 피자한판은 유일하게 참석한 한국친구의 가족에게 줄 수 있었다.
체육관 선생님들께도 피자를 한판 드렸다.
역시 잔치는 풍성해야 제맛이다.
체육관 대여료가 너무 비싸 구디백에 아이템을 더 많이 못 담아주어 그게 가장 아쉽다.
돈 좀 더 쓰고 다른 거 아끼면 되는데.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는 큰아이의 친구가 타고 있었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선물개봉식을 한껏 즐기고 저녁까지 냠냠한 후 9시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역시 생일파티는 힘들다.
찢어진 선물 포장지들.
아무렇게나 뜯어 던져둔 상자들.
아이들이 꼬불꼬불 써 내려간 생일축하 편지.
굴러다니는 비즈와 레고 조각들.
벌써 바람이 빠져 바닥 위를 부유하는 풍선들.
에라. 모르겠다.
내일 치우자.
아이들과 미니언즈를 보며 맥주 한 병을 홀짝인다.
나는 식단 중인데. 절대 금주인데.
몰라. 오늘은 나를 칭찬하자.
그리고
오늘 남편 대신 남편이 되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