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좋은 것도 많다 1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그리울 장면이 무엇인가요?
누군가 질문하면
0.1초 만에 답할 수 있다.
아침 초등학교 등교 모습이요!
초등학교 교문과 그 주변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무척이나 신성하다.
뭔가 숭고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적어도 나한테는.
전에 세바시에 김 훈 작가님의 강연을 보았는데
대 작가님은 초등학교 입학식에 종종 가시는 것 같았다.
일종의 관객으로.
어린아이들과 젊은 학부모들이 만들어내는 생명력에 매료되신 듯했다.
내가 초등학교 반경 500미터에서 느끼는 그 신성한 무엇. 이 그 생명력인가. 싶었다.
이래서 대작가는 다르다 싶었다.
같은 걸 느껴도 저렇게 멋지게 표현하는.
여하튼.
한국의 초등학교 등교풍경도 아름답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교문으로 들어서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는 자원봉사 학부모나 지킴이 어르신들이
'안전'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들고 서 계신다.
아이들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응. 그래." 하면서 모두들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좀 큰 아이들은 목을 주욱 빼고 느릿하게 걷고
초1, 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잡거나
친구와 종종걸음으로 재잘댄다.
하교시간은 더 활기차다.
학교 앞 상가 분식집에 아이들이 복작대고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나 편의점도 와글와글하다.
태권도 학원 차량 앞에는 도복을 입은 건장한 선생님들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젊은 엄마들이 목을 길게 빼고 아이를 찾고 있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온다.
미국 초등학교 앞은 한국과는 다르다.
여기는 도시가 아니라 대부분 차량을 이용해 등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학교들이 숲 속에 있기 때문 이기도 하다.
드라이브 쓰루 시스템인데
학교 앞으로 차들이 길게 줄을 서서 아이들을 등교시킨다.
교문이랄 게 따로 없어서
차로에서 이어지는 학교 건물 앞 도로에 예닐곱 대의 차량이 동시에 서면
건물 앞에 선 선생님들이 차량 문을 열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차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 바로 요때다.
아이들과 5분에서 7분가량 차에서 작은 대화를 나누고
학교 건물 앞으로 진입할 때 보이는
선생님들의 밝은 표정.
손을 흔드는 모습.
아이들이 차에 내릴 때 건네는 반가운 인사.
"굿 모~~~~ 닝"
"오. 아이 러브 유어 드레스!!"
"헤이 가이즈. 해피 프라이데이!!"
뭐. 이런 자잘한 인사들.
차에서 느릿느릿 내리는 아이도 재촉하지 않고 웃으며 기다려주고
아이들과 포옹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의 길로 떠나는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매일 아침 손에 텀블러를 든 교장 선생님이 차 문을 열어준다.
학교에서 17년째 일하고 있는 분이다.
미국도 지역에 따라
공립학교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시작하는 매일의 아침을 아주 사랑한다.
한국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비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곳 학교의 분위기를 보며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나 커닝을 하곤 한다.
미국도 내 세대 학부모들은 체벌도 받고 선생님을 무서워했다고 하니까
(내 이웃들의 경험담을 듣자면)
뭔가 바뀐 게 분명한데 그게 대체 뭘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즐거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이곳의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비전문가로서 찾은 가장 큰 차이점은
분업 시스템이었다.
업무 분장이 확실했다.
우선, 반에 담임과 보조 선생님 두 명이 아이들을 인솔한다.
담임은 학기 커리큘럼과 수업 진행을 담당하고 학부모와 이메일로 소통한다.
보조 선생님은 아이들의 학습 상태에 따라 백업을 하고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아이들의 세부적인 활동들을 관찰하고 도움을 준다.
이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는데
특히 저학년의 경우
보조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와 학습 보조가 정말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만 6세에 유치원에 들어간 우리 집 둘째는
알파벳조차 모르는 상태였는데
보조 선생님들의 돌봄으로 지금은 책을 읽고 간단한 문장을 쓸 줄 알게 되었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 준 거 외에는
집에서 아이에게 별도로 영어 공부를 시키지 않았으니
아이의 까막눈을 뜨게 해 준 것은 모두 그분들의 공이다.
아이의 하루 일과에는
담임보다 보조선생님 이름이 더 자주 나오고
크고 작은 규칙이나 친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분쟁들도
그분들에게 많이 의지하는 듯 보였다.
두번째는
학교에서 불링.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학교폭력? 혹은 분쟁? 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교감 선생님께로 업무가 이관된다는 것이다.
친구들 사이의 작은 문제는 담임과의 상담으로 해결하지만
좀 심각해 보이는 트러블은 담임이 곧바로 교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교장선생님이 각종 이메일을 보낸다.
학교의 행사. 주요한 교육청 방침들. 도네이션과 관련된 공지들을 직접 전달하고
학부모의 반응도 받는다.
상담선생님이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친구 문제도 중재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담 선생님의 역할이 더 커지는 듯 보였다.
음악, 미술, 체육 선생님들이 연 1~2회 아이들과 공연이나 전시회 등을 준비하고
아이가 아프면 간호선생님에게 메일이나 전화가 걸려온다.
데이터 매니저가 아이들의 출결 사항을 관리한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아이들의 독서를 지도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국에서 막연히 모두 담임선생님의 몫일 거라 여겼던
크고 작은 업무들이 미국에서는 전부 세분화되어 각자 이루어졌다.
담임에게 메일을 보내도 담당자에게 바로 전달되는. 그런 식이었다.
그럼에도 담임선생님들은 많은 질문과 요구를 받는 것 같아 보였고
또 매주 많은 양의 공지 메일과 학습 상황에 대한 피드백을 학부모에게 보냈다.
나누어해도 충분히 바빠 보였다.
실제로 밤과 주말에도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아침에 학교 앞에서 차량을 맞이하는 선생님들은
대개 보조 선생님 혹은 학교의 행정 담당 선생님들이라는 걸 몇 달 후에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저분은 누구야.라고 이야기 해줬으니까.
학기 초에 선생님들께서 학부모들을 불러다
본인들의 1년 계획과 포부를 이야기하는 모습도 아주 인상적이다.
실제 미국 초등교사의 월급은 크게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교육철학과 방향을 학부모들에게 알릴 때 보이는 자부심과 애착은
돈으로 값을 매기기 어려워 보인다.
아이의 지난 학기 노트와 현재의 노트를 넘기며
아이가 성장했음을 열띠게 설명하는 담임 선생님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 있자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밸런타인 데이나 선생님의 날. 크리스마스에
선생님이 좋아하는 색. 음식. 알레르기 여부... 등등이 적힌 엑셀 파일을 보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선물을 떠올려보는 나와 아이들.
내가 준 25달러짜리 선물에 손으로 쓴 카드로 답을 하는 선생님들.
아이가 직접 만든 카드를 책상에 붙여두는 선생님.
이런 장면들이 오래오래 생각날 것 같다.
엄마가 학교에 오지 않는 기간만큼 선생님과 멀어지던
내 유년기의 학교.
누군가 싸대기를 맞는 장면이 일상이었던 사춘기 시절의 교실.
그리고 이제는 상황이 좀 바뀌었지만
여전히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장.
때로는 그때보다 더 불행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접할 때
나는 오늘 아침 이곳 학교의 아침을 떠올리게 될 거 같다.
안녕.
오늘도 정말 멋진 하루가 될 거야.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그 인사를.
이제는 선생님들께도 드리고 싶다.
오늘도 잘하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도 멋짓 하루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