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세레나데
어렸을 때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고 너무나 재미있어서 심장이 콩닥거렸다
열려라 참깨! 하며 온 동네 문 앞에서 외쳐댔고
집에 굴러다니는 낡은 이불을 집어 나와 동네아이들과 올라타고 끌고 다니기도 했다.
실제로 이불들이 많이 찢어지곤 했다.
양동이에 들어가 40명의 도둑흉내를 내며 쭈그려 앉아있기도 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왕비의 외도로 복수심에 불탄 왕이 3년간 매일 동침한 여성들을 죽이면서 시작한다.
나라 안에 처녀라는 처녀는 다 사라질 절체절명의 순간.
그 시절로 치면 지금 김은희나 김은숙 작가 같은 이야기꾼 여성이 짠 나타나서
1001일 동안 밤이 새도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본인의 생명을 연장하고
사회적으로는 왕의 폭정을 멈추는 이야기다.
나는 이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자의 처절한 생존 몸부림에서부터 매료되었다.
얼마나 심장이 쫄깃한가.
매일 내 이야기의 다음 편이 궁금해서 나를 죽이지 못하는 전 배우자의 외도 피해자.
이야기 속에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 끗. 내일 계속.- 절단신공을 시전 하는 젊은 작가.
아! 뭐야! 여기서 끝난다고!!!!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려!!!
외치는 TV 앞 내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나는 아라비안 나이트가 펼쳐지는 어느 궁전의 방안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매주 2회 방영하는 시청률 40% 드라마의 다음 편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이제 더욱 진일보한 정기결제 회원으로 거듭나 12편을 하룻밤에 1.5배속으로 완주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성급한 왕이 되었다.
물론 나는 누구도 처형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에 온 사십 대 중반의 나는
이제 시리즈물 전체를 하룻밤에 다 보기에 이미 체력은 노쇠하고.
웬만한 이야기로는 애가 둘이나 되는 감성 제로인 나를 꼬일 수가 없기에
감히 드라마 1화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그러던 내가 요즘 낮이고 밤이고 이야기가 넘치는 플랫폼을 들락거리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There is here.
픽션은 픽션이라 시시하고
논픽션은 논픽션이라 지루하던 K아줌마에게
- 이 이야기는 실화에 기반하였습니다.
아니 그냥 실화, 그 자체입니다. -라고 프롤로그를 써 내려간 이야기들은
웬만한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했다.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써 내려간
소설보다 소설 같은 이야기들은
메마른 내 가슴에 슬픔과 분노, 기쁨과 위안. 공감과 애수의 단비를 뿌려주었다.
세헤라자데가 다시 태어나 내 스마트폰 안으로 찾아온 거 같았다.
나는 내 마음속에 불안, 증오, 집착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함께 강강술래를 추며 저 달나라로 날려 보냈다.
소소한 행복이나 애틋한 감정들도 강변에서 조약돌을 줍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동그랗게 하트버튼을 누르기도했다.
그리고 나도 종종 무자비한 왕 앞에 선 이야기꾼이 되어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다음 이 시간에,를 외쳐대며 하루하루 잠을 설치게 되었다.
참으로 기이하다.
콩쥐 팥쥐도 백설공주도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작자미상의 이야기들이 몇세기 후에 누군가를 만나 그림을 입고 다시 태어나기도 하듯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사는 이야기가 나중에 내가 다음회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새로운 영상으로 재탄생 할지도 모른다.
기대가 된다.
내가 라이킷을 누른 어느 글이.
내가 구독하는 어느 작가의 글이.
세상사람들에게 공감백만개를 받는 이야기로 거듭나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예술로 승화하기를-
찬란한 비늘을 뽐내며 아름다운 자태로
이곳 미국 하늘 위로도 승천해 솟아오르기를 기원한다.
참
원래 아라비안 나이트는 외설적인 내용이 많다 하던데
브런치안 나이트는 이왕이면 12세 이상 관람가로 만들어 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