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인 Jun 20. 2024

행복해서 슬픈 이야기

아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적어볼까. 출산예정일을 지나고 아이가 크면 분만하기 힘들다는 말에 조급함이 생긴 나는 13층 아파트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때 몇 번을 오갔을까.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만삭인 상태로 신랑과 저녁을 먹고 군청 로터리에 있는 대형 크리스마스를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집으로 걸어오는 저녁이었다. 가진통이었을까. 찌릿찌릿 배에 통증이 왔다. 임신 말기에는 가진통이 한 번씩 오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날 밤 속옷에 울컥하고 뭔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급히 화장실에 가보니 초록색 무언가가 변기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아이가 뱃속에서 힘들어 대변을 봤다. 무리해서 계단을 올랐던 것일까) 생전 처음 보는 증상에 놀라 창원에 있는 조산원 원장님에게 문자를 보냈고 진통이 잦아지면 짐을 싸서 내려오라고 했다. 그렇게 새벽 3시에 남편과 창원으로 내려갔다.


30시간이 넘는 진통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내리는 성탄절 아침 아이를 낳았다.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출산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조산사의 판단으로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제모와 CT 촬영, 수분 섭취 불가, 대기실 의자에 웅크리고 잠이 든 남편과 떨어져 밤새 기절과 진통을 반복하며 아이를 낳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이와 나도 모두 건강하게 퇴원했으니 말이다. 출산을 도운 간호사가 “대단하죠! 첫 출산인데 3.6kg 아이를 자연분만하다니” 말하며 바쁘게 수술실 뒷정리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와 보낸 날들은 눈물의 시작이었다. 낮에는 산모 관리사가 옆에 있어주고 바쁜 엄마도 일주일가량 함께 계셨다. 그럼에도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보내는 겨울은 우울하고 눈물나던 계절이었다. 인근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있어 힘이 되어주었지만 밤낮없이 아이를 보살피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퇴근한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은 많으면 4시간이었다. 100일만 지나면 나아지겠지, 일 년만 지나면 수월하겠지. 늘 부족한 수면으로 아이에게 젖만 물리고 잠들던 반복되는 밤들,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건장한 아이를 종일 아기띠로 안고 다니는 시간들. 저녁이면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남편이 퇴근하면 방 안에 누워만 지냈더니 이때 아이는 반사적으로 엄마를 찾아 방 안으로 기어가던 웃픈 장면이 떠오른다. 잠투정으로 발버둥 치는 아이를 온몸으로 안기에는 체력과 정신력이 무너졌다. 아이가 스스로 잠들고 걷고 어린이집을 다녀서 온전한 내 시간을 보내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이제 아이는 말도 잘하고 스스로 잠들고 어린이집도 다닌다. 그동안 나는 하고 싶었던 명상센터와 요가도 다니고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사교모임도 이어 나간다. 성장하는 만큼 고집도 생긴 아이와 갈등도 있지만 하원 버스 창밖으로 엄마를 찾고 다리 사이로 쏙 파고드는 아이를 만날 때마다 세상 부족한 게 없다. 신생아일 때부터 사용했던 이부자리에 몸만 큰 채 똑같이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아이에게 조금만 화를 내야지,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잔소리 그만해야지, 장난감 정리를 하지 않아도, 밥 먹기 전 젤리를 먹는다고 떼써도, 자기 전 양치를 하지 않아도 지혜롭게 풀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지.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아이의 놀랍고 신비로운 시선을 따라간다. 개미집 살펴보길 좋아하는 아이와 무릎을 꿇고 개미를 관찰한다. 먹이로 풀잎을 따서 개미집 주변에 놓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과자나 사탕 주변에 몰려든 개미를 살피는 몰입과 순수함을 경험한다. 또 영상 시간 제한에 ‘한 번만’ 하며 손가락을 펼치며 애교를 부리고 승낙에 환호를 외치는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두 돌 생일 선물로 사준 퀵보드를 일 년 넘게 관심 없어 하더니 어느 순간 잽싸고 능숙하게 퀵보드를 타고 앞장서는 작은 뒷모습도 기억하고 싶다. 퇴근하는 아빠 도어락 소리에 어설프게 숨어놓고는 모르는 척 으면 ‘큭큭’대면서 웃는다. 난처한 질문에 무마하고자 살구 같은 맨 엉덩이를 흔들고 이제는 마주 앉아 제법 티키타카 대화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식탁 자리에서 엉뚱한 말솜씨로 우리의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순간은 기쁘면서 슬프게 한다. 영원하지 으므로.


훗날 아이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 테다. 기억하질 못할 누군가의 유년 시절을 하나하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세포 구석구석 저장해 놓아야겠다. 네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는지 말이다. 행복해서 슬픈 이야기이다.


작가의 이전글 걸레질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