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없이 사랑을 줄줄 아는
거절을 못해 그만두지 못하고 출근하는 곳이 있다.
9살 꼬마들을 데리고 교구로 수업하는 수학 학원인데 유독 이해력이 안 좋고 산수 능력이 낮은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이럼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똑같은 질문에 답답함을 숨기지 못하고 짜증 낸 적이 많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친절히 대해 보지만 3+9가 12라는 것을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퇴근하는데 가는 길이 겹쳐서 함께 걸었다.
“선생님은 어디 가요? 어디 살아요?”
“선생님은 집에 가지. 난 우리 집에 살아.”
“우리 집 어디요? 저는 학원 가요! 근데 저랑 옷 색깔 똑같아요.”
나란히 분홍색 패딩을 입은 게 꽤 마음에 들었는지 신나 보였다.
“그러게. 우리 둘 다 핑크 옷이네. 기분이 어때?”
“좋아요! 우리 커플 옷 같아요!”
초승달처럼 접힌 눈이 마스크에 가려질랑말랑 했다.
귀여웠다. 수업 때 화내지 말아야지.
어제도 실패했다.
2x1도 2고 9x1도 9인데 10x1은 왜 1이 되는 걸까.
알 수 없는 논리의 딜레마에 빠져 수업 내내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해맑게 인사하는 꼬마에게 오늘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그때 그 학원에 간다고 하길래 같이 나가자고 했다.
“선생님 잠시만요! 저 엄마한테 전화 좀 하고요.”
스피커폰도 아닌데 쩌렁쩌렁 들리는 통화음 덕에 의도치 않게 엿들었다.
“엄마! 나 학원 끝났어!”
“그랬어~? 이제 다른 학원 가는 중이야?”
“어! 근데 나 선생님이랑 같이 손잡고 가고 있어!”
제삼자처럼 가만히 있으려 했는데 개입당해버렸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휴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 데려다주셔도 되는데 감사해요.”
“아니에요. 어차피 가는 길이라서요.”
꼬마는 짧은 통화에서 몇 번이나 엄마한테 나와 손잡고 걸어가는 것을 강조했다. 머쓱해져서 돌아본 옆에는 마스크 위로 그때 그 눈짓을 보이고 있었다.
“선생님이랑 걸어가니까 좋아?”
“네!”
“손 잡고 가는 것도 좋아?”
“네! 선생님 꼭 엄마 같아요!”
“우와 00이 엄마 또 생겼네. 선생님이 둘째 엄마 할게.”
되도 않는 농담으로 9살처럼 받아치며 걸어갔다.
학원 앞에 도착한 꼬마를 보내려는데 추운 날씨에도 여전히 들떠있었다.
“선생님! 다음에도 또 같이 와요!”
“그래그래. 다음에도 데려다줄게. 공부 열심히 해!”
멀어지려던 나의 두터운 외투 위로 폭신한 패딩이 덮였다. 아직 덜 자란 짧은 팔로 나를 감싸 안지도 못한 작은 손길. 꼬마의 포옹에 내 마음은 따스해졌다.
“다음 주에 학원에서 보자! 00이 안녕!”
손을 흔들던 내 눈도 초승달처럼 잔뜩 휘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