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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l 15. 2023

살아내야 할 이유



딸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살며시 화장실문쪽에 귀를 댔다. 울고 있다. 세면대 물을 틀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다. 우리가 우는 모습을 보면 아빠가 더 슬퍼할 거라고 울지 못하게 하던 아이였다. 장례 치르는 내내 씩씩하게 버티던 딸이, 몰래 숨어 울고 있다. 아빠에게 못다 한 말들을 되뇌며 슬퍼하는 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찾아온 아빠의 죽음. 이를 감당해야 하는 아이에게 그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려 했지만 머릿속이 멍하다. 정신줄을 잡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려니. 그렇게 문 너머로 아빠를 잃은 딸의 슬픔과 마주했다.






망설이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숨기지 말고 슬퍼하자, 아빠 얘기 마음껏 하면서 함께 슬퍼하자."


혼자 슬픔을 감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로 써가 아닌 이 시련을 함께 하는 사이로 건넨 말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슬픔에 잠긴 우리 딸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를 보는 딸아이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함께 누운 잠자리에서 딸아이가 말을 건넨다.


 "전에 아빠랑 둘이 낚시 가서 잡은 주꾸미 진짜 맛있었는데, 라면에 넣어서 끓여 먹었잖아,

그거 또 먹고 싶다.


... 아빠 보고 싶다."


"엄마도 아빠 보고 싶다, 아빠 먹고 싶다는 거 많이 해줄걸."


"엄마 또 울어?(놀리는 말투)"


"응, 엄마 울어. 이게 당연한 거잖아."

..

"그러네, 그게 당연한 거네."


이렇게 딸아이는 슬픔을 받아들이며 그리운 아빠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기 시작했다. 슬퍼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 엄마가 더 슬퍼할까 봐 싸매고 있던 마음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아빠가 보고 싶을 때 맞장구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는 듯했다.

딸의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죽음을 대하기 벅찬 순간,

삶은, 찰나의 기쁨을 보게 한다.

         



터덜터덜 삶을 걸어간다. 과연 이 시련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러다 이렇게 간간이 희망을 본다. 비록 찰나지만 그런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간다. 그 순간들을 모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이런 순간들은 존재했다. 불쑥 찾아오는 그때를 잡아 긴 여운을 남겨 놓는다. 또다시 무너져 내릴 나를 잡아줘야 하기에, 지켜야 할 소중한 딸이 있기에. 흩어져 있는 희망의 조각들을 붙여 고이고이 간직한다.



하루하루 성실히 흘러가자 다독여본다.

삶이 내게 준 역할을 다하는 그 언젠가

살아낸 혜택을 맞이하는 날이 올 거라

간신히 그렇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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