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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Jan 09. 2021

편식하지 않는 법

생각보다 단순한 해결책

못 먹던 음식이 갑자기 당기고, 그동안 신나게 먹던 음식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가 든 건가? 나이가 들면 입맛이 바뀐다더니, 새삼 나이 듦을 실감했다.


입맛이 어느 정도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금치무침과 가지볶음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금치무침은 시금치의 향이 강해서, 가지볶음은 가지의 식감이 물컹해서 싫었다. 그래서 시금치와 가지 자체를 먹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랑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근처 유명한 중국집에서 이것저것 주문하기로 했다. 친구는 메뉴를 보더니 갑자기 가지 튀김을 먹겠다는 거다. 물론 그 중국집의 시그니처 메뉴이기도 했지만, 난 가지를 안 먹던 터라 한 번도 시켜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친구만을 위한 가지 튀김을 추가로 주문했다.


겉보기에는 나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가지를 안 먹는 사람인 걸. 딱 한 번만 먹어보라고 먹고 별로면 더 강요하지 않겠다고 하는 친구의 강요에 안 먹겠다고 거절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게 웬걸! 너무 맛있었다. 내가 알던 가지볶음의 가지와는 다른 맛이었다.


또 다른 어느 날이었다. 동생이 요리를 배웠다며 시금치 카레를 해줬다. 시금치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속으로는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먹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시금치가 맛있었다. 내가 알던 시금치의 맛이 아니었다.


평생을 편식하며 거들떠도 안 본 음식을, 의도치 않게, 그것도 한순간에 먹게 되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나의 편식은 고쳐졌다.

생각해보면 편식을 고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조리법을 바꾸면 된다.


무침에서 찜으로 혹은 탕에서 튀김으로. 조리하는 방법이 바뀌면 음식의 맛이나 식감이 달라진다. 그 달라진 방식은 충분히 내 입맛에 맞을 수 있다. 지금까지 편식을 하던 내가 민망스러웠다. 이렇게 간단히 먹게 될 거! 나는 결코 시금치와 가지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

사람과 사이도 마찬가지다. 첫인상만 보고, 아님 첫 만남만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걸 판단해 버린다. 앞으로도 나와 잘 맞을 사람이다, 아니다. 그렇게 내가 탈락(?)시킨 사람만 몇 명인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나도 나의 판단을 신뢰하며 그렇게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요즘 그게 너무 오만한 행동이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나조차도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누군가는 나에게 그래 주길 바랬다니.


모든 처음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처음의 순간 하나를 전체라고 착각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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