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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곰 Jan 15. 2021

[룬 베이커리-1] "달이 가득차 세상을 비춘 날"

달이 가득 차 세상을 환히 비춘 날. 몽쉘랑 남쪽 숲 가장자리에 작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내부엔 전등이 빛났고, 창문 너머로 누군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굴뚝 위론 구름빵 모양의 연기가 생겼다 사라졌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몽쉘랑. 강이 마을을 안아 섬처럼 떠있다. 시곗바늘이 3시·6시·9시·12시를 가리키듯, 사방으로 다리가 놓였고 그 뒤론 숲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색색의 앙증맞은 집들이 총총하다. 키높이를 맞추다 프리지어를 연상케 하는 노란색 지붕만 불쑥 솟아있다. 그 아래. 레오 네 명패가 나부낀다. 옹이구멍에 스친 바람은 멜로디로 변해 흩어진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굴뚝으론 밥 짓는 연기가 뽀얗게 피어난다. 뒷마당 잡목 사이로 빨갛게 익은 딸기가 얼굴을 내민다. 옆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레오 네 조랑말 동키의 입술이 불게 물든다.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쯤, 어둠이 소복이 내려앉는다. 




타닥타닥. 난로에 넣은 나무들이 붉게 타들어 갔다. 차가운 공기를 밀어낸 따스함이 방 안으로 퍼졌다.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안나는 레오를 깊숙이 끌어안았다.


"할머니 둥근달 얘기해주세요" 레오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할머니 안나를 재촉했다. 


"녀석도. 매번 듣는 얘긴데. 또 해줘?" 물방울처럼 맑은 레오의 눈. 세차게 머리를 끄덕이자 찹쌀떡처럼 볼이 늘어났다. 안나는 사랑을 가득 담은 눈으로 레오를 쳐다보곤 머리를 쓰다듬었다.


"둥근달이 뜬 날, 남쪽 숲 가장자리엔..." 그렇게 이어진 안나의 이야기. 어느새 레오의 양 눈이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가라앉았다. 어미 새가 아기 새를 안듯 안나는 담요를 당겨 레오를 더 감쌌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알겠지?" 닿지 않을 말. 그렇게 레오는 안나의 옛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매일 밤 꿈나라로 향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달이 가득 찬 날, 레오는 창문에 선 채 남쪽 숲을 바라봤다. '꼭 저곳에 갈 거야' 


해가 얼굴을 감추고 모두가 잠든 시간. 달빛 만이 유일하게 마을을 비췄다. 


그 시각, 레오의 집 이층 창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끼익~삐그덕. 낡은 창문의 불협화음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어떡하지' 천둥소리라도 들은 듯 놀란 레오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주변을 살폈다.


깨어난 사람이 없단 걸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또다시 새어 나온 소리. 앙증맞은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숨 쉬는 것도 있은 채 놀란 토끼 눈만 굴렸다.


'무서울 땐 할머니가 100을 세라고 했어' 100, 99, 98... 0. 레오는 조용히 침대 옆 장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쌓여 있던 커튼 두장을 꺼내 손으로 꼬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 새끼줄처럼 꼬인 커튼. '도르래로 쓸만한 게...' 방 안을 살피던 레오는 한쪽 끝을 몸에 감았다. 이어 또 다른 끝을 침대 다리 사이로 통과시켜 창문 아래로 내렸다.


레오는 아래로 늘어진 커튼을 잡곤 창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허공에 매달린 레오. 나무에 달린 아기 새 같다. 레오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커튼을 밀어 올리며 1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땅바닥까지 조금 부족한 줄. 레오는 몸을 감싸던 커튼을 풀고 뛸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호기로웠지만 착지엔 실패했다. 잔디 방석에 떨어졌지만 엉덩이는 복숭아처럼 빨갛게 부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입을 앙다문 채 엉덩이만 매만지는 레오. 인기척이 없자 숲으로 향하는 남쪽 길을 따라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레 움직였다.


차가운 바람을 타고 밤 산책에 나선 동물들 소리가 날려왔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지만 아직 숲의 경계도 보이지 않았다. 

 

"히잉~너무 늦어서 못 찾으면 안 되는데. 할머니에게 꼭 전해드려야 하는데" 레오의 슬픈 목소리가 고요한 숲 속에 흘렀다. 큰 눈망울에선 금세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했다.


숲의 경계에 도착한 레오. 어느새 하늘에 뜬 달이 앞을 비췄다. 레오는 달빛을 쫓아 걷고 또 걸었다. 


'할머니 말이 맞았어. 진짜 있었어' 멀리 있지만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나무집. 굴뚝 위로 구름빵 모양의 연기가 피어났다. 레오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레오의 눈에 손바닥 만했던 오두막이 축구공 만해졌다. 힘이 빠져 돌부리에 걸렸다. 옷은 흙투성이가 됐고 무릎은 까졌지만 레오의 얼굴엔 행복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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