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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곰 Dec 11. 2020

'밥정나다' 오장육부는 철야작업 중

[시간이 멈춘 방-여행편]

오늘도 나의 오장육부는 철야 작업 중이다


퇴사 후 부지런해진 건 몸이 아니라 입이었다. 손에 든 스팸 한 통이 700kcal, 라면 한 봉지가 500kcal.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끓는 물. 아차 하는 순간, 라면 두 봉지와 스팸 한 통이 냄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넣었지만 내 의지가 아닌 악마의 속삭임에 이끌린 척. 아니면 손이 미끄러진 척. 늦었다. 라면 냄새가 코를 찔러 온다.


끓고 있는 라면을 보는 내 두 눈엔 욕망이 가득했고, 양심을 잃은 내 몸뚱이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꼴에 양심은 있는지 빈손을 한번 쳐다봤다. 양심이 아니라 그냥 액션이겠지마는. 우리 동네 말로 반까이다.


성인의 경우 한 끼 식사로 700~800kcal가 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포자인 내가 계산해도 아침상은 1700kcal로, '수퍼 푸드' 수준이다. 그것도 몸에 더럽게 나쁜 것으로 말이다. 운동 선수를 육성하던, 돼지를 키우던 내실은 없지만 우량한 품종이 탄생할 건 확실해 보인다.



집요정이 된 이후 매일 '삼시 세끼'와 '냉장고를 부탁해요'를 찍었다. 여행 전, 냉장고를 파먹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결과는 말해 뭐하냐. 입이 터진 후 스케일은 더 커졌다. 아침·점심은 집에서, 저녁은 지인을 만나. 하루하루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있었다.


집에서 혼자 먹는 건 줄여도 밥자리는 줄일 수 없었다. '밥정'이라고 했던가. 여행 전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었고 준비와 정리를 지나 필요한 과정이었다. 비탈에서 밀면 굴러갈 정도의 살 찐 모습은 애써 부정했다. 


먼 길 떠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자리인데, 막상 만나면 주제 없이 떠들고 먹기 바빴다. 근데 싫지 않았다. 그저 웃고 떠드는 시간이 행복했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나누고 밥을 먹는 게 좋았다. '어제 뭐 했어? 그래? 안주가 맛있네.' 머리를 쓰지 않는 그 시간이 좋았고 서로를 탐색하지 않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 사람은 어때요? 아 그래요?! 그럼 이제 거기서 새로 뭐 하는 거 있어요?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한테만 살짝 말해주세요. 어디 가서 말 안 할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런 것도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난 잘 모르겠어. 못 들어 봤는데. 아 그래?' 이따위 지긋지긋한 대화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다. 


술과 안주가 몸을 채웠다. 오장육부가 철야 작업을 시작한다. 여행 동안 느끼지 못 할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를 '오늘이 끝이야'라고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고 웃음만 나온다. 여행 중 즐겼던 자리만 따지면 차고 또 넘친다.


바람을 넣기 시작한 풍선인가. '조금 살이 오르는군. 약간 통통한가?! 조금 살쪘네. 음~살이 찌긴 했는데 금방 빠져. 어라?! 배가...운동해야 하나? 식단 조절로 괜찮을 정도 아닌가? 술을 좀 줄일까? 하루 한 끼만 즐기자. 위험한 수준인가? 살이 많이 졌네. 근데 운동은 싫어.'


합리화도 이정도면 병이다. '뇌로 가는 이성의 회로를 살이 막는건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남들이 모를거라고 생각하지만 남들도 다 아는 사내 연애 같이' 내 몸의 변화도 그랬던 거다. 단지 모두 말을 아꼈을 뿐인데. 


'운동 대신 식이 요법을 할까? 갑자기 식사량을 줄이면 몸에 무리가 되겠지. 다이어트를 보조할 수 있는 식품이 있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며 생각했다. 필터링 없이 지나간 생각들. 핑계의 핑계가 이어지니 결국 제자리였다. 여행 전 다잡아야 할 몸과 마음이 지방에 녹고 녹았다. 


나의 탐욕의 역사


뜬금없지만 나의 탐욕의 역사는 길다. 시골에서 태어나 유복하지 않던 유년 시절을 보냈다. 매 끼니가 중요했다. '밥은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일종의 목표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숟가락이 넘칠 정도로 밥을 뜨고 양 볼이 터질 듯 음식을 밀어 넣었다. 햄스터처럼 양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오물거리는 입 밖으로 반찬이 흘렀다. 음식을 다 씹지 않은 채 나의 숟가락은 밥을 뜨고, 나의 젓가락은 반찬으로 향했다. 먹고 또 먹었다.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어리지만 머슴 밥을 먹던 나에게 더 권했다. 눈칫밥을 알 때쯤 내 탐욕은 놀림거리가 됐다. 때론 상대에게 질시의 대상이 됐다. "먹는 타이밍만 되면 기가 막히게 온다" 비릿하게 조소가 날아든 적이 있었다. 여전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전역 이후 밥에 대한 탐욕은 더 커졌다. 당시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져 반강제적으로 자립할 수밖에 없었다. 잠잘 곳 조차 없어 친구네 집에 얹혀 사는 말 그대로 '기생충'의 삶이었다. 


'땡그랑. 땡그랑'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동전 소리만 들린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아직 월급을 받으려면 20일 남짓 더 기다려야 했다.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던 시절. 허기진 배를 주려 잡고 슈퍼를 찾았다. 내 주머니 사정으로 살 수 있는 건 라면이 전부였다. 두 봉지는 무리였다. 며칠을 아껴 지폐를 마련해 슈퍼를 찾았다. 라면과 함께 소면을 집었고, 난 행복했다.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였다. 면 사리를 대신할 소면도 넣었다. 전에 느끼지 못한 텁텁한 밀가루 맛이 목을 자극한다. 뱉어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음날도. 


기억해 보면 30일 정도 라면을 먹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하고 놀랍다. 하지만 국수의 밀가루 맛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한 번 헹궈야 한다는 사실은 10년 뒤에 알았다. 일찍 알았으면 그나마 맛있게라도 먹었을 텐데. 


그 뒤로 밥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나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면 심부름이 됐건 일이 됐건, 손해를 보던 말던. 따지기 전에 일단 갔다. 촬영장이 제일 좋았다. 삼시 세끼에 야식, 술, 담배까지. 내 형편에 가장 맘 편히 있던 곳이었다. 그곳이 누군가에겐 꿈꾸는 장소였겠지만 나에겐 삶의 현장이었다.

 



식탐이 늘면 혼자 먹는 게 편해야겠지만 난 정반대였다. 재수하던 시절, 지독히도 외롭게 보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미친 듯 걷고, 그 속에서 느낀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 정도였다. '어떻게 그 시절을 온전한 정신으로 보냈을까?'라는 반문도 든다. 


막상 내 탐욕의 역사를 쓰고 보니, 어디에나 나올 법한 진부한 이야기다. 클리셰 범벅이다. 근데 사실인 걸 어쩌냐. 다시 생각해 보니 나 자신에게 잘 버텼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이 모든 게 지금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만들어 냈다. 밥 사주는 사람이 가장 좋고, 좋은 사람과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좋다. 여행을 떠나기 전 누군가의 '밥 한끼 하자'라는 말을 놓칠 수 없었던 이유이자 '식구'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이 뒤룩뒤룩 찌고 몸이 녹아도 그들과의 밥이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자리였다. 오장육부가 살펴달라 아우성쳐도 달래가며 철야 작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많은 사람과 밥정을 나눴다. 결과적으로 내 몸은 다시 풍선처럼 부풀었다. 지금도 다이어트를 위해 채소 스무디를 먹고 있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여전히 혼자 밥 먹는 게 어렵다. 밥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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